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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겨울 목련나무 곁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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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겨울 목련나무 곁에 서서

입력
2011.12.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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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리 마당에 목련나무가 장엄합니다. 잎이 무성한 것도 아니고 꽃이 화사한 것도 아닌데 저 겨울나무에서 저는 장엄의 시간을 봅니다. 얼음이 어는 추운 날씨에,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 목련나무는 빈 몸 맨살로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거기다 꽃눈 잎눈을 달고 겨울에서 봄까지 걸어가는 생명의 순례자 같은 모습은 당당함을 넘어서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목련나무 꽃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그늘지고 추운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옛사람들은 목련꽃을 '북향화'(北向花)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모든 꽃은 해를 지향하는데 이 겨울나무의 꽃눈 역시 된바람과 맞서 추운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가혹한 시련과 혹독한 인내 끝에 봄이 오면 목련은 화려하게 피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쉬 지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젊어서 아셨던 스승은 '오랜 기간 정성을 기울여 피운 보람들이 너무 쉬이 무너지는 그 아픈 운명을 예감하는 것이어서 해를 등지고 북향하는 것일까?'(신상철 수필 '한 그루의 이 목련을'에서)라고 자문했습니다.

목련나무 옆에 나란히 서봅니다. 나무에 귀를 대어봅니다. 나무 속에서 물소리가 납니다. 얼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소리가 납니다. 가장 엄격한 자세로 겨울을 견딘 사람에게 가장 찬란한 봄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올 겨울도 스스로에게 엄격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도 그러할 것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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