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가마솥과 팽형(烹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가마솥과 팽형(烹刑)

입력
2011.12.22 12:09
0 0

올 한 해만큼 동상 건립을 둘러싸고 수많은 대립과 갈등이 일어난 적은 없다. 부산 서구청은 부민동에 임시수도 기념거리를 조성하고 3월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3개월 뒤 동상은 머리 위에 붉은 페인트를 뒤 집어 썼다. 누군가 몰래 페인트를 들어부은 것이다. 5월엔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가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에 김백일 장군 동상을 건립했다.

소통 부재가 특징이 된 1년

한국전쟁 당시 흥남에서 철수하는 미군을 설득해 10만 명의 피난민을 배에 승선시킨 공을 기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항일독립군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를 창설한 김백일 장군의 친일 행적이 확인 되면서 철거논쟁이 일고 있다. 거제 시민단체들이 동상에 달걀을 투척하거나 동상을 검은 천으로 덮은 뒤 쇠사슬로 묶어 두고 철거를 촉구하는 반면 보수단체들은 철거반대 집회를 열면서 찬반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매년 수십억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 관변단체인 자유총연맹이 8월 3억 5,000만원을 들여 남산에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남산에 서 있던 이승만 동상이 시민들의 손으로 철거된 지 51년 만이다. 이 동상은 건립 후 과잉보호를 한다고 수선을 피웠다. 자유총연맹에서 동상 주변에 폐쇄회로 TV 4대를 설치한 것은 약과다. 동상 주변에 전ㆍ의경이 배치되어 경비를 섰고 세 군데 파출소와 지구대 경찰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24시간 내내 1시간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 무엇이 두려워서 24시간 철통 경비를 세웠을까.

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엄이도종(掩耳盜鐘ㆍ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이다.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살펴보면 2008년부터 정부의 소통 부재와 독단적 정책 추진을 우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4대강 사업 일방 추진, 한미 FTA 강행처리, 대통령 친인척 비리,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등이 불신을 자초한 예다.

동상을 통해 한국사회를 들여다봐도 소통부재가 올 한해의 특징이다. 국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이승만 동상 건립 등 이념 갈등을 방조하는 형국이다. 이승만 동상 건립은 이념 갈등을 떠나서 국가의 최고 법규범인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 봐야한다.

올 한 해를 뒤돌아보며 조각가로서 꼭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 조형물이 생겼다. 서울 종로구 혜정교에서 팽형(烹刑)을 시행 할 때 쓰던 커다란 가마솥이다. 에 "국법에 탐장(貪藏)한 자는 이 다리에서 팽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팽형 또는 부형(釜刑)이라고도 하는 이 형벌은 실제로 장작에 불을 붙이지는 않지만 가마솥에 죄인을 넣고 삶는 시늉을 하는 공개형이다. 가마솥에 담긴 죄인은 죽은 시체처럼 시늉을 해야 한다. 유족들은 살아있는 시체를 칠성판에 뉘어 들고 가 장례를 치렀다. 죄인은 장례 후 호적과 족보에 죽은 사람으로 오르게 된다. 비록 실제로 사람 몸을 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명예를 실추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는 면에서 커다란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의 마음 어루만지는 정치 돼야

엄이도종의 해답게 도심에 들어서는 모뉴먼트 조차 국민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 동상을 세워 국민들 갈등을 부추기느니 가마솥을 만들어 혜정교터에 걸어둔다면 국민들 가슴이 얼마나 시원할까. 게다가 팽형은 해학성과 연극성이 뛰어나다. 상석(上席)에 앉은 포도대장의 불호령에 따라 죄인을 끌어내 가마솥에 넣고 팽형에 처하는 일련의 퍼포먼스는 백성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해학이 담겨있다.

혜정교터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두고 비록 연극이라도 탐관오리를 벌하는 포도대장의 불호령을 들어보고 싶은 것이 국민들 심정이다. 정치가 국민들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하니 예술이 위문 공연을 해야 할 시국이다.

전강옥 조각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