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52) 신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고 해도 지휘봉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의외의 발언이다. 월드컵 본선은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들에게도 '꿈의 무대'다. 그러나 최 감독은 "내가 맡은 소임은 최종 예선 통과다. 본선에 나갈 수 없다는 내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대표팀 감독을 맡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전례에 없는 일이다.
원치 않게 '독이 든 성배'를 떠안게 된 상황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지 않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최 감독은 대표팀 감독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자신이 유일한 대안으로 좁혀진 상황에서 더 이상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하기 어려운 처지에 이르자 '한시적 수락'이라는 타협안을 내놓게 됐다. 그는 "더 이상 제안을 뿌리치면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결단을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성적을 장담할 수 없는 본선에서까지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던 듯 하다. 그는 "대표팀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선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아시아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본선에서 성과를 내기에는 내가 여러 모로 부족하다"고 했다.
국제대회 본선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던 국내 감독들의 전례가 최 감독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법 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을 코 앞에 두고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박성화 감독은 6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본선에서 8강 진출에 실패, 성토 대상이 됐다. 차범근 감독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승승장구하며 국민적 영웅이 됐지만 본선에서 2연패한 후 도중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본선 진출이라는 한국 축구의 당면 과제를 해결한 후 깨끗하게 발을 빼겠다는 것이 최 감독의 속내다.
최 감독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전북 현대에 대한 의리를 져버릴 수 없음도 털어 놨다. 그는 "전북과 장기 계약을 하기로 구두 합의가 된 상황이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떠난다는 생각은 1퍼센트도 없었다. 나와 함께 팀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선수들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고 가슴도 아팠다"고 말했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