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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카이사르의 조사(弔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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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카이사르의 조사(弔詞)

입력
2011.12.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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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에서 폼페이우스 죽음을 알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8년 10월 정적(政敵) 폼페이우스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쓴 <내전기> 에 남긴 단 한마디다. 참으로 짧은 말이었다. 그러나 절묘했다. 지면 자신이 죽고, 이기면 권력을 차지하는 내전에서 폼페이우스의 죽음은 승리를 의미했지만, 카이사르는 로마의 미래를 생각해 아주 절제된 표현을 썼던 것이다. 자축하거나 저주했다면 스스로를 옹졸하게 만들고 폼페이우스파를 자극했을 것이다. 반대로 너무 미화했다면, 루비콘강을 건너 내전을 시작한 자신의 당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 <로마인 이야기> 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문예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말을 인용, 카이사르의 한마디를 '문장이라기보다는 대리석에 새겨진 예술'이라고 격찬했다.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패배, 알렉산드리아로 도망갔다가 믿었던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한 폼페이우스. 나흘 후 알렉산드리아에 도착, 정적의 머리가 담긴 항아리를 받아든 카이사르. 이 삽화에는 패자의 비참한 죽음과 승자의 화려한 등극이 엇갈린 잔혹한 내전만 그려졌을 뿐이지만, 카이사르의 조사(弔詞)가 덧붙여지면서 정치가 되고 문학이 됐던 것이다.

■ 카이사르는 냉혹하진 않았지만 냉철했던 것이다. 하지만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 는 '옛 친구의 죽음을 보는 카이사르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실제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문학과 역사에서는 정적의 죽음을 애도하는 큰 지도자, 큰 정치를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가 "하늘이여, 주유를 낳고 왜 제갈량도 낳았습니까(旣生瑜 何生亮)"라고 탄식하며 병사한 오나라 대도독 주유의 빈소에 제갈량이 가서 슬피 울었다고 묘사한 것도 비슷한 정서라 할 수 있다.

■ 동양에서는 조문이나 조의가 훨씬 더 엄격하고 섬세하게 다뤄졌다.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는 유족만 알고 고인을 모르면 유족만 위로하고 고인에 애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돼 있다. 거짓으로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고인만 알고 유족을 모르면 애도만 하고 위로하지 말라고 한다. 정부가 담화에서 조의를 표하지 않고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만 한 것도 김정일 통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절제된 메시지를 담은 듯하다. 그러나 역사와 문학의 정서는 조금 더한 애도도 용인하니, 개별적인 조문에 너무 예민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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