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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내 아버지는 전직 군 사령관” 친자확인소송 패소하자 자살한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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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내 아버지는 전직 군 사령관” 친자확인소송 패소하자 자살한 50대

입력
2011.12.2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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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휴전 무렵인 1953년. A씨는 태어나자 마자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러니 자신의 친 부모가 누군지 알지 못한 채 자랐다.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낸 A씨는 성년이 된 뒤 친 부모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났을 때 대한민국은 전쟁 후유증으로 모든 것이 어수선했던 시기였다. 당연히 출생과 관련된 어떤 기록도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A씨의 ‘뿌리찾기’는 그렇게 세월에 묻혀 희미해졌다.

환갑을 바라보던 A씨는 지난해 친부로 추정되는 인물을 찾았다. 전직 군 사령관 출신의 B씨. 6ㆍ25전쟁과 월남 파병전투에서 대활약한 군 장성으로 한국 전쟁사에 큰 이름을 남긴 유명인이다.

하지만 B씨 입장에선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A씨가 뚜렷한 증거도 없이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아들이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B씨는 A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생모의 지인들로부터 아버지가 군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A씨는 결국 B씨를 상대로 친자확인 인지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내기에 이르렀다.

팔순을 넘긴 B씨는 친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3차례 속행 공판에 참석했지만, DNA 유전자 감식만큼은 거부했다. 현행법은 특별한 이유 없이 소송 당사자가 DNA 유전자 감식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재판부는 추가 제재를 하지 않고 심리를 마쳤다.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 “A씨의 생모와 B씨가 1943년 교제해 자신을 출산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지만 이를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유전자 감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객관적 자료가 워낙 부족해 A씨의 손을 들어 줄 수 없었다”고 전했다.

A씨는 1심 판결이 나자 즉각 항소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경찰서를 찾아가기도 하고 일부 언론사 기자를 찾아 하소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의 주장에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답답한 가슴을 치던 A씨는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 10월31일 A씨의 뜻대로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실에 DNA 검증기일 잡자 큰 기대를 했다. 법의학 검증을 통해 친자여부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B씨가 이날 나타나지 않아 A씨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아버지로 믿고 있던 B씨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낀 A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내가 죽더라도 소송을 계속 이어주길 바란다”는 유서만 남긴 채 지난달 30일 서울 광진구 광진교 난간에 올라가 목을 멘 것이다. 숨진 A씨의 가방에는 유서와 함께 B씨가 쓴 책만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A씨는 사망했지만, 법원은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사소송법 상 A씨의 가족이 소송을 승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강제할 수 없지만, B씨에게 유전자 감식을 지속적으로 권유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B씨를 아버지로 생각한 A씨의 집착은 돈키호테적 망상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핏줄의 지독한 끌림이었을까. 재판부는 6개월쯤 뒤 결론을 낼 생각이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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