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정보 당국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51시간 30분이 지나도록 몰라 '먹통'이 됐던 근본적 원인은 외교안보라인의 전문성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정원과 통일부 등 주요 대북 정보라인의 수장에 전문가보다는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 또는 정권창출 공신이 임명되는 바람에 외교안보라인의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 이들이 국가안보 업무에 전념하기 보다는 대통령과 정권에 충성하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정보활동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측근 출신의 정보라인 수장들은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실∙국장 등 간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업무 연속성을 단절해 정보 능력을 크게 약화시키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권영세 국회 정보위원장은 21일 라디오에 출연해 "외교안보 라인은 다른 분야와 달리 한번의 실패가 나라의 존립을 흔드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므로 대통령과의 친소관계가 아니라 전문성에 따라 임명돼야 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이어 "이 정부에서 외교안보 라인이 전문성과 관계없이 임명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의 발언은 국정원장 등을 겨냥한 것이다. 2009년 2월에 임명된 원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행정1부시장을 지낸 대표적 행정관료 출신으로 국가안보나 정보 분야에서 일한 경험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취임 후 핵심 중책인 기획조정실장에 서울시에서 과장, 국장을 하며 자신을 보필한 목영만 전 행정안전부 차관을 임명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원 원장 체제에서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2011년 2월)과 리비아 주재 직원 간첩 혐의 추방 사건(2010년6월)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미행 사건(2010년 5월) 등 국정원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외교안보라인 정치 인사는 현 정권뿐만이 아니다. 고 김대중 정부 전반기에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천용택 전 원장 등은 모두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이종찬 전 원장은 안전기획부 출신으로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그가 국정원장에 오른 것은 DJ정권 창출 과정의 공적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정권교체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새로운 정보기관의 상'을 정립한다는 명분을 내걸어 국정원 직원 물갈이를 대폭으로 추진했다.
국정원 출신의 한 관계자는 "정권교체에 따라 정치적 성향과 지역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배경이 다른 세력이 들어오면서 물갈이가 됐다"며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쌓아 온 막대한 인적 정보 네트워크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또 다른 방향으로 물갈이가 이뤄지면서 정보 네트워크의 한계를 노출시켰다"고 설명했다.
대북 정보라인의 다른 축인 통일부 장관에도 대통령 측근이나 정치권의 핵심 인사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따른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외풍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등의 문제점도 생겨났다. 현재 재임 중인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현정부에서 대통령실장을 지냈고, 정동영 민주당 의원도 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 대표를 거친 뒤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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