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보도가 나던 날, 나는 군대서 상병달고 휴가나온 조카와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꿀보다 더 달콤한 휴가를 보내던 조카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부대에 복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부터 했다. 조카의 임시 핸드폰으로 너 이제 어떡하냐고 물어대는 친구들의 문자가 점심 먹는 내내 쇄도했다. 점심을 다 먹었을 때 부대에서 전화가 왔다. 부대 복귀 명령은 아니었고 비상대기 하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북한이 바로 내다보이는 강원 철원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는 조카는 민간인 신분인 나보다 사망보도에 민감했고 현실적이었다.
어제 아침, 페이스북에 대학 후배가 올린 글을 보고 웃어야 하는 건지 걱정을 해야하는 건지 헷갈렸다. '바로 지난 주에, 대형마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군인아저씨한테 "그럼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 가야죠!"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던 장남(일곱 살짜리다), 어제 저녁먹을 때 뉴스를 열심히 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엄마, 나 군대 가기 싫어요. 군대 꼭 가야해요?" 아침에도 몇 번이나 군대가기 싫다고 울먹였다. 처음엔 왜 그런가 의아했는데, 평소와 달랐던 게 뉴스였다.'
분단이 뭔지, 전쟁이 뭔지 모르는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도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서 연일 쏟아지는 뉴스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는 걸까? 다들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까지도 전쟁에 대한 공포가 참 컸다. 당시만 해도 너무 철저하게 이루어지던 반공교육 때문이었는지 북한이 한겨레, 한민족, 내 동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전쟁이 나면 어디에 숨어야 하나, 피난은 어떻게 가야 하나, 이산가족이 되면 어떻게 만나나 걱정을 하느라 잠못들던 기억도 난다. 집 밑에 방공호를 만들고 땅굴을 파서 숨어야겠다고 궁리도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고, 남북간 민간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되는 것을 보면서 전쟁에 대한 공포는 사라져갔다. 공포가 떠나간 자리에 오히려 통일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채워져갔다.
금강산 관광이 아직은 허용되던 무렵, 초등학생 딸아이를 데리고 개성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개성의 산과 들을 보고, 선죽교도 직접 보고, 고려 박물관도 구경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물론 개성관광지에 나와있는 안내원 동무들이었지만-을 만났다. 나와 딸을 보고 엄마와 딸이 아주 닮았다며 선한 웃음을 짓는 북한 사람들은 우리 이웃과 별 다름 없는 눈매와 웃음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북한 주민이 한민족, 한겨레 내 동포임을 아주 살짝 아주 잠깐 몸으로 느꼈다.
김정일 사망보도 이후에도 사재기 같은 것은 없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조문과 관련된 논란이 있다는 보도도 있다. 북한 주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는 보도도 있다.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앞으로 북한은 어떻게 될지, 한반도의 정세는 어떻게 변할지는 뉴스를 열심히 봐도 국내정치에 무관심하고 국제정세에도 무지한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후배의 일곱 살짜리 아들이 전쟁에 대한 공포가 아닌 통일과 평화에 대한 기대를 키우면서, 통일을 꿈꾸면서 자라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숙제가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 조카는 오늘 부대로 복귀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기자리를 잘 지켜주길 바란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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