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물론 미국이 백악관 대변인과 국무부를 통해 20일(현지시간)까지 사흘째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요 현안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명해온 오바마 대통령이 민감한 국제이슈인 북한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김 위원장 사망을 공식 발표한 지 30분만에 보고를 받고 2시간 뒤 이명박 대통령과 전화로 한반도 상황을 논의하는 등 매우 긴박하게 대처했다.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상황 보고를 받으며 사안을 직접 챙길 정도로 이번 사태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직접 발언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침묵 외교'를 하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의 불확실성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젊고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이 외부의 자극을 도발로 간주해 호전적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공격적 행동은 한국의 즉각적인 반발을 초래해 한반도 상황을 순식간에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이 19일 김관진 국방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신중함을 당부한 것에도 이런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유진 로빈슨은 "미국 대통령이 지금 시점에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것이 북한 사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이 오바마 대통령의 행동에 함축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반대로 "대통령의 절제되지 않은 발언과 행동이 갑작스런 지도자 교체를 맞고 있는 북한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침묵외교를 높이 샀다. 로빈슨은 "지금은 핵무기를 보유한, 밀폐되고 편집광적인 정권에 심각한 압력을 행사할 때가 아니다"며 보수진영의 대북 추가 압박 주문을 반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침묵은 미국이 북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고, 따라서 대통령이 발언을 통해 판단을 내릴 시점이 아니기 때문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대북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것을 빼면 공개된 사실이 거의 없는 북한 자체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이유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 일련의 협의를 하고 매우 세심하게 고려된 단어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신중한 행보를 하는 것도 이란 맥락에서 이해된다.
뒤집어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발언하는 시점이 곧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 방향과 판단이 선 때라고 볼 수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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