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된 루머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대북 정보 수집에 큰 허점을 보인 정부 탓이기도 하지만 제한적인 북한 정보에 대한 갈증이 루머를 생산하고, 이 루머는 다시 음모론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게 사망 시점. 20일 인터넷에는 '김정일 사망과 함께 컴백 북한 리춘히 北 특별방송'이라는 글이 급속히 퍼졌다. 작성자는 10월 19일 이후 북한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조선중앙방송의 리춘히(68) 아나운서가 상복을 입고 나타나 김 위원장 사망을 발표한 것과 관련, "(김 위원장이 북한 발표대로 17일 사망한 게 아니라) 리춘히가 사라질 즈음 김정일이 사망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이들이 있다"고 적었다.
또 "리춘히가 그동안 사망 보도를 준비한 의혹이 있다", "최근 김 위원장 현지지도 모습이 동영상이 아닌 사진으로만 나온 것을 보면 사망 시점은 훨씬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의 이윤걸 대표는 "잘 아는 북 군부 관계자에 따르면 사망 시점이 발표보다 12시간가량 빠른 16일 저녁 8시"라며 "북한 당국은 체제 동요를 우려해 발표를 늦췄지만 유교문화가 나름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사망 발표를 사흘간 미루긴 힘들어 하루 정도 조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이다.
사망 장소나 원인에 관련된 루머도 돌았다. 한 네티즌은 "오전 8시30분 사망했다면 적어도 오전 5, 6시에는 열차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며 "추운 겨울, 쇠약한 최고지도자가 이른 시간에 열차로 이동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죽는 순간까지 현지지도에 매진한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키기 위한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루머들은 급기야 음모론으로 이어졌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김 위원장이 총을 맞고 숨진 합성사진이 내걸리기도 했다. 최근 시민군 총에 맞아 죽은 무하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시신 사진에 김정일ㆍ정은 부자의 얼굴만 합성한 것이었다.
김 위원장의 사망 관련 소식으로 위장한 컴퓨터 악성코드도 등장했다. 안철수연구소는 김 위원장의 사망 관련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속여 PC에 악성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불법 광고 프로그램(애드웨어)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로 위장한 인터넷주소(URL)를 클릭하면 홈페이지가 변경되거나 검색어가 특정 광고 사이트로 전송된다. 오사마 빈 라덴과 스티브 잡스 등 유명 인사의 사망 때도 유사 사례가 발견됐었다.
삼성이 정부보다 먼저 김정일 사망 사실을 감지했다는 소식도 화제가 됐다. 19일 일부 언론이 "삼성그룹 한 고위 임원이 북한의 사망보도 하루 전인 어제(18일) 저녁 김정일 사망설을 어디선가 듣고 언론사에 확인전화를 했으며 저녁 약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면서 소문이 트위터 등을 통해 확산됐다. 또 관련 기사가 일제히 포털 등에서 삭제되면서 외압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과연 삼성공화국"이라며 "국가의 정보력이 어떻게 기업보다 못할 수 있냐"고 꼬집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허경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