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역사를 가진 '스웨덴의 자존심' 사브(SAAB)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중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 결국 사브가 희생됐다는 지적이다.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지방법원은 19일(현지시간) 사브가 낸 파산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조만간 법정관리인을 지정하고, 인수자를 찾아 나설 계획이다.
사브는 볼보와 함께 스웨덴을 대표하는 자동차 업체. 1937년 항공기 제조업체로 출발해 1947년부터 자동차를 만들었다. 항공기 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트기의 터보엔진 기술을 승용차에 최초로 적용하는 등 기술력과 안전성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사브의 불행이 시작된 건 미국 자동차회사 제네럴 모터스(GM)를 만나면서부터. 2000년 사브를 인수했던 GM은 사브 브랜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재정 상태가 어려워 지자 결국 네덜란드계 '스웨디시 오토모빌(옛 스피케르)'에 넘겼다. 새 주인은 "스웨덴 기술력의 정체성을 되살려 2012년부터 이익을 내겠다"고 선언했지만, 1년 만에 자금은 바닥이 나 재매각 추진에 들어갔다. 3,700여 직원은 1년 가까이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고, 3월 이후 공장 가동도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
이번엔 새 주인으로 중국 회사들이 떠올랐다. 중국 팡다자동차와 저장영맨로터스가 1억 유로에 사브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
그러나 전 주인인 GM이 제동을 걸었다. 사브가 중국에 넘어가면 핵심기술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GM은 매각 후에도 사브의 우선주를 보유하면서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등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브의 고급 세단 '9-5'는 GM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9-4X'는 아예 GM 멕시코 공장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 사브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면 GM을 설득했지만, GM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는 "사브가 회생을 위해 2년 가까이 안간힘을 썼지만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기술력과 전통을 지닌 외국 회사를 인수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가만 볼 수 없다는 GM의 반대로 뜻을 접어야 했다"면서 "GM의 중국 견제가 사브를 파산으로 이끌게 됐다"고 전했다. 앤서니 미첼 미 세인트존스 대 교수는 "GM으로서는 사브가 중국회사에 넘어가면 중국을 주 무대로 활약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중국에서 무시 못할 잠재적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한 측면도 있다"며 "GM의 이중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사브의 앞날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고 보고 있다. 몇 군데서 인수의향을 밝힌 곳은 있지만, 지난 수 년 동안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떨어진데다, GM의 플랫폼과 디자인을 너무 많이 가져다 쓰면서 사브 고유의 정체성도 사라진 상태라 회생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많다. 결국 사브 브랜드는 사라지고, 자산을 분할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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