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낮 12시쯤 서울 충정로 한국구세군 본부. 밤색 재킷 차림의 할아버지(92)와 회색 반코트를 입은 할머니(87)가 찾아왔다.
김종선 구세군 사관은 노부부를 한눈에 알아봤다. 2년 전 이맘때 이들 노부부가 손을 잡고 구세군 본부를 찾아와 5,000만원짜리 수표 2장을 자선냄비 후원금으로 내놨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각각 평안도 신의주와 정주가 고향이고, 1950년 6ㆍ25전쟁 때 피난을 와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밝힌 노부부는 당시 "어려운 북한 주민을 돕는 데 써달라"며 1억원을 쾌척했다.
이날 2년 만에 구세군 본부를 다시 찾아온 노부부는 1억원짜리 수표 2장이 든 봉투를 김 사관에게 건넸다. 이번에도 "아무도 모르게 해달라"는 신신당부가 이어졌다.
노부부는 "이 후원금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 청소년을 돕는 데 써달라"고 말한 뒤 "진짜로 오늘 밤은 다리를 쭉 펴고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만희 구세군 사령관은 "뜻에 따르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구세군에 따르면 노부부가 맡긴 총 3억원의 자선냄비 후원금은 1928년 자선냄비가 생긴 이래 개인이 기부한 금액 가운데 최고 액수다.
올해 구세군 자선냄비에도 이들 노부부로 대표되는 '이름없는 천사'들의 온정이 잇따르고 있. 지난 16일 밤 서울 청계천 오간수교에 설치된 자선냄비에서는 5만원권 1만원 1,000원권이 가득 담긴 8개의 봉투(1,174만5,000원)가 나왔다. 앞서 4일에는 60대 초반의 남성이 서울 명동 우리은행 앞 자선냄비에 "좋은 곳에 써 주십시오"라며 거리모금으로는 사상 최고금액인 1억1,000만원짜리 수표를 넣고 가기도 했다. 자선냄비 모금은 24일까지 계속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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