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죽었다. 2008년 쓰러졌다가 오뚝이처럼 일어난 지 3년 만이다. 그 때 막연하나마 3~5년 더 살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그러나 북한의 예순아홉은 우리보다 훨씬 고령이다. 김일성보다 적은 나이지만, 무장 항일투쟁으로 단련된 김일성에 비할 수 없다. 방탕한 생활에 관한 온갖 얘기가 모두 음해가 아니라면 오히려 오래 산 셈이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에 못지않은 비탄과 애도에 휩싸일 것이다. 김정일은 어버이 수령과 나란히 위대한 영도자로 떠받든'민족의 태양'이다. 늘 엄동설한 같은 위기의식에 볼모 잡힌 인민을 따뜻하게 지켜준 태양이 사라진 충격은 말로 이루 다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저들에겐 다행히 김정일은 수령과 자신을 꼭 빼 닮았다는 후계자를 남겼다.
김정일 떠난 체제는 불안
이제 29살인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인민군 대장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올랐다. 북한은 그를 수령과 지도자 동지를 빼 닮은 절세의 위인, 천재적 선군 영장으로 선전한다. 주체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할 위인의 천품과 천재적 군사지략, 컴퓨터공학과 문화 예술 체육에 이르는 탁월한 지식과 지도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실제 할아버지를 닮았다. 여기에 머리스타일과 복장까지 젊은 시절의 김일성과 흡사하게 연출한다. 키와 생김새에 차이가 큰 김정일을 동상 초상화 등에서 수령과 닮은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과 같다. 수령의 영생불멸을 되뇌면서 자기복제적 세습으로 체제 정통성을 지키려는 의도다. 북한은 이른바 생체정치(biopolitics)를 세습 체제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김정일이 떠난 북한은 또 어떻게, 얼마나 버틸까. 다수 의견은 북한체제의 내구력을 높게 본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뒤에도 붕괴론을 비웃으며 잘 견뎠다. 그 바탕은 분단과 전쟁의 고통스런 기억과 반미 민족주의 정서를 이용, 국민적 일체감을 유지한 것이다. 전체주의 특유의 감시ㆍ통제와 주민들의 정치적 효능감 부재도 주된 요인이다. 여기에 미국과의 핵 대결과 외부 원조도 생존에 도움이 됐다.
이런 시각에서는 김정은 통치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더십 불안이 있더라도, 독재적 권력을 행사하는 당과 권력 엘리트 집단이 체제를 지탱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김정은이 안팎의 도전에 끝내 지도력을 보이지 못하고 다른 권력 엘리트와 갈등하면, 스탈린과 마오쩌둥 사후 권력다툼과 같은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관측한다. 특히 전통적 당ㆍ군 관계를 벗어나 김정일의 개인적 권위에 의지한 유일지도체제가 그대로 작동할지 예단할 수 없다.
김정일은 군이 체제수호에 앞장서는 선군정치를 외치면서도 군의 영향력을 제한했다. 군의 보나파르티즘적 속성을 경계한 것이다. 당과 군이 권력 승계를 순조롭게 관리하지 못하고 분열될 경우, 내폭(implosion)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어떤 인물도 김정일에 버금가는 권위로 당과 군과 사회를 통치할 수 없어 불안과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변화를 준비하는 지혜
그렇다면 김정일의 죽음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어떤 근거와 이유로든 체제변화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꺼리는 이들은 북한이 흔들리는 것을 지레 경계한다. 늘 그렇듯 내부가 불안하면 바깥을 위협할 것을 걱정한다. 그걸 억누르면 고슴도치처럼 움츠린 채 긴장을 높일 것을 우려한다. 그러다 끝내 버티지 못하면 대량난민과 내전, 핵무기 유출 등 재앙을 남길 것이란 카산드라식 관측이 공교롭게도 최근 부쩍 늘었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가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안길 것으로 볼 일은 아니다. 옛 동구와 같은 평화적 체제전환이 불가능하다지만, 그 때도 역사적 변화를 예견한 이는 없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20년 이후'를 마냥 기약할 일이 아니다. 김정일의 죽음으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그걸 축복으로 이끄는 의지와 정교한 방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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