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달(先達)은 요즘 느낌으로 '씨(氏)'의 존칭쯤 되겠다. 조선시대 어느 김씨가 장터에 나갔다가 닭 파는 가게 앞에 섰다. 유난히 좋은 닭을 가리키며 "저 봉(鳳)은 얼마냐?"고 물었다. 주인은 "봉이 아니라 닭이다"고 말했으나 김씨가 "분명 봉인데 왜 닭이라 하느냐"며 우기자 주인은 "그러면 봉 값을 내세요"라고 말했다. 닭을 봉 값에 산 김씨는 고을 원님에게 '봉'을 진상했고 거짓말을 했다며 볼기를 맞았다. 김씨는 닭 장수와의 대질신문을 거쳐 무죄를 인정 받았고, 닭 장수는 김씨에게 봉 값의 몇 배 되는 배상금을 물었다. 봉이 김선달 얘기다.
■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다는 감동이 채 식기 전에 봉이 김선달의 재주에 속아넘어간 닭 장수의 꼴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이후 속속 드러나는 실상(한국일보 19일자 1ㆍ2면 보도)을 보면 무엇인가에 홀려 잠시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김선달 좋은 일만 시켜준 닭 장수의 처지에 놓인 듯하기 때문이다. 자동전화시스템까지 동원해 두 달 사이에 1억 수천만 통의 '관제투표'를 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선의의 국민들로선 장터에서 닭과 봉의 흥정에 함께 즐거워하다 배상금의 연대보증인이 된 셈이다.
■ 제주도의 경관이 '봉'이 아니라 '닭'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제주도의 경관은 이미 세계적 공인을 받고 있다. 전 세계가 공인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 세계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 지질공원의 타이틀 모두를 획득해 놓고 있다. 더구나 동떨어진 밀림이나 미지의 외딴 섬이 아니라 사회와 도시와 인간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7대'가 아니라 '5대' 혹은 '3대' 경관으로도 아무런 손색이 없다. 다만 상상의 동물인 '봉'이라는 이름을 얹어보려고 관제투표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 뒤늦게 '세계 7대 자연경관' 이벤트를 한 뉴세븐원더스(N7W)의 신뢰성이나 공공성을 지적하는 일은 부질없다. 사사로이 혹은 이상한 단체를 내밀고 인기투표 이벤트를 벌이는 곳이 지구촌에 한두 곳이었는가. 문제는 전화투표 과정에서 시ㆍ도 공무원의 '부정행위'가 조직적으로 행해졌고 그것이 비용 감당 논란으로 번지면서 국제적 망신을 살 처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해결책은 상식과 합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관제투표의 비용을 충당해선 안 되며, 그래서 선정이 취소된다면 그리 되는 게 맞다. 그렇다고 그 자연경관이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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