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출생과 성장 과정은 물론 사생활 등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김정일과 그의 세 번째 부인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영희(2004년 사망) 사이에서 1982년 1월 8일 평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조작설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1983년생인 김정은의 우상화를 위해 김일성(1912년생) 주석과 김정일(1942년생)의 출생년도 끝자리를 맞췄다는 것이다. 형제로는 김정철,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형 김정남이 있다. 최근에는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소개로 지난해 두살 연하인 김일성대 박사과정 여성과 결혼했다는 설이 있다.
본명이 김정운(金正雲)이라는 설도 있다. 북한이 3대 세습의 정통성 부여 차원에서 검은색이 연상되는 '구름'(雲) 대신 '밝게 빛난다'는 의미로 '은 은(銀)'자를 쓰다가 '은혜로움'을 강조하기 위해 '은혜 은(恩)'자를 써 김정은(金正恩)으로 개명했다는 것이다.
신장 168㎝에 몸무게 87㎏으로 추정되는 김정은의 모습 때문에 벌써부터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에 있는 리베펠트-슈타인 횔츨리 공립학교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박은' '박운' 등의 가명으로 생활한 그는 유학시절 컴퓨터 게임과 액션 영화, 미국 NBA 농구 시청을 즐겼고 특히 마이클 조던의 열성팬인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 귀국한 김정은은 2002년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에 입학, 군사학을 전공했다. 2007년 졸업 당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포 사격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다룬 졸업논문을 제출했다. 지난해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로 이뤄진 '축포야회'가 김정은의 작품이며, 수차례 김정일 앞에서 포 사격 시범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김정은이 2004년부터 3년간 강원 평강군 5군단 산하 보병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고 선전하지만 후계 승계 명분을 쌓기 위한 조작설도 나온다. 이 밖에도 북한은 김정은의 대표적 치적으로 컴퓨터 제어기술(CNS)를 줄곧 선전한 바 있다.
김정일은 자신처럼 야심이 강하고 저돌적인 성향의 김정은을 편애한 것으로 전해진다. 형 김정철과 팀을 나눠 농구경기를 한 뒤 팀원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한 김정철과 달리 승부욕이 강한 김정은은 팀원들과 오랫동안 '반성회'를 가졌다고 한다. 특히 김정남과 김정철을 제치고 후계자가 된 것도 형들보다 카리스마가 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김정은은 2009년부터 국가안전보위부를 동원,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김정은 후계자 낙점설은 2009년 1월초 처음 알려졌다. 김정일은 당시 김정은의 생일에 맞춰 그를 후계자로 결정한 뒤 이같은 결정 교시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샛별 장군'으로 불리던 김정은은 이후 '김 대장' 또는 '청년 대장'으로 불렸다. 북한 당국도 김정은 찬양곡인 '발걸음'을 보급하는 등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했다. 일부에선 후계자 내정 시점을 2006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당시 북한군 교양자료에 "김정은 대장 동지는 주체의 선군혁명 위업을 이으실 것을 바라시었다"고 언급됐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북한 권력의 3대 세습자로 공식 데뷔한 무대는 지난해 9월, 1966년 이후 44년만에 열린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등극했으며, 9월30일 노동신문에 사진이 처음 공개되면서 베일을 벗었다. 당시 김정일은 중앙군사위에 군 수뇌부를 포진시키고 비상설 최고군사지도기관이던 중앙군사위를 상설 기관화하는 등 김정은이 군을 통제하도록 배려했다.
김정은은 올해 3월초부터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김정일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조선중앙TV는 최태복 비서 등 당 원로들이 허리 숙여 김정은에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를 후계자로 부각시켰다. 김정은도 지난해 노동당 창건 65주년 행사, 올해 북한 정권 창건 63주년 열병식 등 공개활동에 김정일을 거의 빠짐 없이 수행하며 그의 적통임을 과시했다. 지난 5월과 8월 김정일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평양에서 정치적 홀로서기를 시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서방 유학경험을 근거로 김정은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연평도를 포격했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군부대를 지난달 김정일과 함께 시찰한데서 보듯 호전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장재용 기자 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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