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설] 김정일 떠난 북한, 질서 있는 변화를 유도하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설] 김정일 떠난 북한, 질서 있는 변화를 유도하자

입력
2011.12.19 12:04
0 0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달리는 열차 안에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합병으로 사망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어제 공식 보도했다. 남북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충격적인 뉴스다.

김 위원장이 3남 김정은을 공식 후계자로 지명하고 권력승계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북 체제에서 차지하는 절대적 위치를 감안할 때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내부 권력투쟁 심화 등 대격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고, 동북아에서 미-중간 미묘한 갈등관계로 북한 발 긴급사태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 사망의 파장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

오늘의 북한 뼈대를 이룩한 37년 통치

북한 정권의 창업자는 김일성이지만 실질적으로 오늘의 북한 체제를 만든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었다. 김정일 시대는 1994년 7월 김 주석의 사망과 함께 시작된 고난의 행군기간을 거쳐 1998년 9월에 공식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1974년 2월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된 때부터였다. 1980년 10월 공식적으로 후계자 지위를 획득한 뒤에는 아버지 김 주석과 함께 북한을 공동으로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수령 절대주의와 유일지도체제 등 오늘날 북한 체제의 핵심 뼈대는 그 시기에 김 위원장이 주도해 만들었다.

남북대결 시기 극악한 대남도발도 대부분 그가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과 부정적 유산에 가장 큰 책임은 그에게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ㆍ15공동선언을 계기로 열린 남북화해와 평화공존, 교류협력의 시대에 한 축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잇단 방중과 대미 관계 개선, 7ㆍ1경제관리 개선조치 등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개혁개방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개성공단이나, 지금은 중단됐지만 금강산관광 사업 등을 포함한 남북경협 활성화는 그런 흐름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다른 한편으로 선군정치를 내세워 집단주의를 강화하면서 핵 개발을 계속하고 인권 개선 등 국제사회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 여기에는 남측과 미국 등을 포함해 북한의 불신을 해소하려는 국제사회의 적극적 의지가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김정일 체제의 폐쇄적 속성이 문제였다. 북한이 그 동안 수 차례 개혁과 변화의 시도와 후퇴를 되풀이하며 일정 선을 넘어서지 못한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2008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는 등 그의 건강 문제도 대외 유연성과 변화를 제약한 요인이었다.

김정은 후계구도 무리 없이 구축될까

김 위원장은 자신이 그토록 외쳐왔던'사회주의 강성대국'의 달성 목표 해를 보름도 남기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수많은 주민이 굶주리는 절대 빈곤과 경제난, 권력투쟁, 인권 문제 등 숱한 난제는 3대 세습 후계자인 어린 아들에게 넘겨졌다. 국가 운영의 중요 경험이 없는 29세의 김정은에게는 정말 벅찬 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의 시선으로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물론 당장 북한 권력 내부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대사에 유례는 없지만 나름대로 확고한 세습왕조체제를 구축한 상태에서 권력승계가 진행돼 온 탓이다. 현재로서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그의 남편 장성택 당 행정부장 등 로열 패밀리 중심의 후견그룹이 권력 공백상태를 관리하면서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도울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가계 우상화와 결합된 주체사상과 선군사상, 유일지도체계 등 북한 특유의 시스템도 안정적 권력승계에 유리한 요인이다.

그러나 권력의 과도기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선군 정치로 과도하게 힘이 실린 군부의 실력자들을 포함해서 권력 핵심에 접근해 있는 인사나 세력의 움직임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완전히 후계권력을 구축하기까지 향후 1년 이상은 걸릴 것이고, 그 기간에 북한 권력 내부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예측을 불허한다. 다만 김정은의 일천한 경험이나 취약한 기반에 비춰 별 탈 없이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른다 해도 아버지만큼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장성택 등 실세후견 그룹의 섭정 또는 그들이 중심이 되는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대결보다는 대화와 개방으로 나서게

김 위원장의 돌연한 사망은 남북관계에도 중대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으로 분단 후 최악의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다. 류우익 통일부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유연성을 강조한 뒤 변화를 모색해 왔지만, 북측은 기만 전술로 치부하며 전혀 호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돌발사째?발생했다. 남북간 소통이 가능한 채널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상황 관리에 어려움이 클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내부 갈등의 부담을 외부로 돌리거나 내부 단결 용으로 의도적인 대남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거론한다. 꼭 그런 의도가 아니더라도 북측 군부가 개입된 내부 충돌이 발생할 경우 휴전선의 긴장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충분한 대비태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과의 정보 협조는 물론 유사시 공동 대처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김정일 사망 이틀이 지나도록 전혀 낌새조차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대북정보 능력 수준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전망을 어둡게만 볼 일도 아니다. 김정은이 후계체제를 조기에 안정적으로 구축하려면 주민생활 개선이 급선무이고, 이를 위해서는 외부지원이 필수적이다. 김정일 장례절차가 마무리되고 어느 정도 내부 정돈이 이뤄진 뒤에는 외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유화조치를 취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전 세계에서 폐쇄주의와 대결주의를 고수해 경제난을 극복한 사례는 없다. 북한은 개혁과 국제사회 복귀를 통해 정상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 권력 내부 갈등으로 인한 혼란보다는 질서 있는 변화로 유도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최선이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과도 정권이 대결보다는 대화와 개방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23일로 예정된 전방 등탑 설치 등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 등은 삼갈 필요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