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9년여 만에 철수한 이라크에 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군이라는 균형자가 사라진 공백을 틈타 이라크 내 정파와 종파, 부족간 뿌리 깊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18일(현지시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경쟁 정파인 시아파와 수니파 간 해묵은 갈등 등 내분이 격화할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총리는 이날 미군이 철수한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수니파 수장 살레 알 무트라크 부총리의 불신임을 의회에 요청했다. 수니파 주도의 정당연맹체 이라키야가 말리키 총리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며 전날 등원을 거부하자, 말리키 총리가 수니파 수장 부총리 불신임이라는 초강수 카드로 맞선 것이다. 정치분석가 카드힘 알 메크다디는 "미군 공백에 따른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측의 정치적 갈등 해소가 우선"이라며 "권력 다툼이 지속될 경우 또다시 외국의 간섭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란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라크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어, 이라크가 다시 주변국들의 패권 경쟁의 무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정쟁뿐 아니라 석유 등 천연자원 개발을 둘러싼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갈등도 잠재적 화약고다. 말리키 총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쿠르드 자치정부는 지난달 엑손 모빌 측과 석유탐사협정에 서명했다. 수니파가 다수인 살라헤딘주가 10월 반자치정부를 선포했고 이달 12일에는 디얄라주도 반자치정부 자격을 공식 요구하는 등 일부 주정부가 천연자원의 개발권을 두고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천연자원에 대한 중앙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말리키 총리에 공공연히 반기를 드는 것이다. 워싱턴 중동연구소 웨인 화이트 연구원은 "말리키 총리가 지속적으로 시아파 권력 기반 강화에 나서면서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군 철수 후 경제 재건에 속도를 내야 하는 중앙정부는 애가 타지만 끊임없는 내전과 폭탄 테러 등 일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전력 부족, 고질적인 실업난 등은 국민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국제 컨설팅업체 IHS 글로벌인사이트의 애널리스트 갈라 리아니는 "이라크는 수많은 장애물에 직면해 있지만 정부는 난국을 헤쳐나갈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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