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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여성 실버합창단 첫 공연/ 무대 위 탈북 할머니들 "나의 살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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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여성 실버합창단 첫 공연/ 무대 위 탈북 할머니들 "나의 살던 고향은…"

입력
2011.12.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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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언니, 빨리와. 공연 곧 시작인데 뭐해. 우리 늙은 티 내지 말고 성큼성큼 들어갑시다. 다들 가사도 다시 한번 체크하고."

17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복도, 노란색과 검정색이 어우러진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20명의 노인 합창단원들이 단장 한금복(65)씨의 지시에 맞춰 조심스레 강당에 들어섰다. 이들의 얼굴에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대열 맨 앞에 선 맏언니 김은숙(80)씨를 따라 단원들이 속속 들어오고 피아노 연주를 맡은 막내 김선화(가명ㆍ63)씨까지 자리를 잡았다. 잠시 숨을 고른 한씨가 "남한에 와서 도움만 받고 살았는데 오늘을 계기로 소외된 분들을 위해 노래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균연령 65세인 탈북자 최초 여성 실버합창단 '고향의 봄'의 첫 공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1부 첫 곡 '고향의 봄'이 시작되자 미세한 떨림 속 담백한 화음이 만들어 졌고 이들의 8자 주름은 환한 미소에 금세 사라졌다.

합창단이 처음 입을 맞춘 건 지난 4월. 종교단체 '기독교사회책임' 소속의 탈북자 모임 '탈북동포회'를 이끌던 김규호 목사가 이들의 남한 정착을 돕고 음악을 통한 봉사를 위해 회원들에게 제안하면서부터다.

"TV 프로그램에서 중년 남성들이 합창단을 구성해 대회 나온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죠. 남한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당수 탈북 노인들이 이등시민이란 꼬리표를 뗐으면 했습니다."

탈북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어서 자체 오디션을 봐 탈락자를 가려낼 정도였다. 이들의 열정은 프로 못지 않았다. 단원 김동옥(71)씨는 "8개월 간 경기 평택시에서 연습실이 마련된 서울까지 매주 두 번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왕복했지만 한 번도 결석이나 지각은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 목사는 "연습실을 마련하지 못해 한 단원 집에 모여 연습하다 시끄럽다는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며 "한여름 문을 닫고 연습하다 땀 범벅이 된 게 여러 번"이라고 했다.

하지만 넘치는 의욕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 속도 많이 태웠다. 북한에서 35년 간 음악교사로 활동해 노래지도를 도맡은 김선화씨는 "언니들이 기초가 없어서 콩나물대가리(음표)나 악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음을 가르쳤다"며 "관객 앞에만 서면 긴장 때문에 가사를 잊는 무대공포증도 심했다"고 했다.

이날 3부에 걸쳐 진행된 공연에서는 '과수원길',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같은 남한 노래뿐만 아니라 '통일무지개', '봄노래'와 같은 북한 노래도 함께 했다. 객석에 있던 30여명의 탈북 노인들과 그 가족들은 익숙한 노랫말을 들으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우연래(가명ㆍ80)씨는 "북에서 자주 듣던 노래라 감회가 새롭다. 두고 온 자식들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합창단 고문 장인숙씨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수를 놓았네. 닐리리야 닐리리' 라는 가사처럼 남북한의 문화 차이를 노래로 극복해 통일의 디딤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준비한 11곡을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 선 김규호 목사와 단원들의 표정에는 대단한 성취감이 묻어났다. "평소 집에만 머물던 어머니들이 이렇게 자신 있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탈북자도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년에는 전국, 후년에는 해외 순회공연까지 열겁니다." 감격에 겨운 김 목사의 말이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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