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검찰이 대통령 친인척들의 비리 의혹을 동시다발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수사 강도도 예사롭지 않다. 검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검찰은 최근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76) 한나라당 의원의 최측근 보좌관 박배수(46)씨와 대통령 사촌처남인 김재홍(72) KT&G복지재단 이사장을 알선수재 혐의로 잇달아 구속했다.
박씨는 이국철(49ㆍ구속기소) SLS그룹 회장과 유동천(71ㆍ구속기소)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로비 자금 7억5,000만원을, 김 이사장은 유 회장으로부터 4억2,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사조직인 ‘일명회’의 사무국장을 지낸 대통령 손윗동서 황태섭(75)씨도 2008년 이후 제일2저축은행 고문으로 영입돼 수억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대통령 친가와 처가 쪽이 한꺼번에 의혹에 휘말린 상황이다.
폭발력이 가장 큰 사안은 역시 이상득 의원 관련 부분이다. 현 정부의 ‘상왕’으로 불린 이 의원이 보좌관 박씨의 금품 수수 과정에 연루된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박씨가 이 의원을 15년 이상 보좌한 측근인데다, 이국철 회장도 “이 의원을 보고 (박씨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고 있어 이 의원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검찰 수사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재홍 이사장과 황태섭씨 부분도 만만치 않다. 김 이사장에 이어 만약 황씨마저 사법처리될 경우 “재임 중에는 친인척 비리가 없도록 하겠다”던 이 대통령의 약속은 공언(空言)이 돼버려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 제일2저축은행이 금융전문가도 아닌 황씨에게 수억원의 고문료를 지급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황씨가 저축은행 구명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되면 검찰 수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이처럼 검찰이 정권의 숨통이라도 조일 듯한 기세로 치닫자,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은 정권 말기의 당연한 현상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한 부장검사는 “권력의 힘이 떨어지면 그동안 눈치 보느라 입 닫고 있던 사건 당사자들이 실세들의 비리 제보를 쏟아낸다”며 “검찰로서는 축적돼 있던 범죄 동향에 신빙성 있는 새로운 증거들이 뒷받침되면서 수사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반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검찰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PD수첩 사건,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등에서 모두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정치 검찰’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특수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난 8월 취임한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라는 점 때문에 처음부터 “임기 말에 대비한 친위 인사”라는 의심을 샀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잇달아 터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은 검찰에 부패 이미지까지 덧씌웠다.
이런 조직의 위기 타파를 위해 검찰이 대통령 친인척 비리 수사에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고강도 수사로 검찰의 존재의의를 보여주자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검찰 최고의 강성 ‘특수통’들로 꾸려진 현 대검 중수부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라인을 볼 때, 검찰 수뇌부보다 수사팀의 의견이 영향력을 더 갖게 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