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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부채 1000조… 요람에서 무덤까지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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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부채 1000조… 요람에서 무덤까지 빚

입력
2011.12.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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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내 빚 갚는 '악순환'… 여러 곳서 빌린 다중채무자 무려 380만명

충남 천안에서 병원약국 사무보조로 일하는 최나영(가명ㆍ30)씨. 중산층이었던 최씨 가족이 빚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순간이었다. 직장에 다니던 아버지가 2001년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만해도 다행히 산재 처리가 돼 병원비 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고가는 아니지만 아파트에다, 2억원 가량 은행 대출로 지은 다세대주택도 있었다. 어머니는 고정 수입을 위해 상가를 분양 받아 호프집을 열었고, 그 즈음 최씨도 조그만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회사 사장이 최씨 카드를 빌려 2,000만원을 결제한 뒤 잠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처음엔 그럭저럭 장사가 됐던 어머니 가게도 근처에 호프집이 하나 둘씩 생기면서 금세 적자로 돌아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카드 빚과 대출이자 부담이 점차 밀려왔다. 할 수 없이 아파트를 팔아 일부 은행 빚을 해결했다. 한숨 돌린 어머니는 다세대주택을 담보로 1억원이 넘는 자금을 빌려 프랜차이즈 피부관리실을 열었지만 또 실패했다. 은행은 상환을 요구했고, 어머니는 집을 살리려 사채를 얻었다. 여동생도 대학을 그만두고 취직했다.

최씨 자매의 수입만으로 빚을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카드 돌려막기에 나섰고, 직장을 옮기는 휴지기에는 사채를 또 얻어야 했다. 어느새 최씨 가족의 빚은 3억원에 육박했다. 매달 이자 부담만 300만원. 최근 3년 동안 최씨 자매가 버는 수입 대부분을 이자 상환에 썼지만, 빚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최씨는 올해 4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 이후 삶은 나아졌을까. 3년 동안 팔리지 않던 다세대주택이 지난달 팔려 일부 빚을 상환하고 전세대출로 전환하니 은행 빚 1억5,000만원이 남았다. 현재 최씨 가족의 수입은 자매의 월급과 아버지 장애인연금을 포함해 총 270만원. 이 중 회생 납입금(채무 원리금)과 보증대출 이자로 매달 220만원이 나간다. 20대 청춘을 오로지 빚 갚는데 쓴 최씨는 앞으로도 5년간 회생 절차를 통해 빚을 줄여야 한다. 그는 "5년이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빚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다중채무의 덫은 중산층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빚은 쌓이고 이자 부담은 벌이보다 더 커져 또 빚을 얻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최씨 가족의 사례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 받은 다중채무자는 무려 380만명. 이들의 대출액 중 56%가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비(非)은행권에서 이뤄졌다. 비은행권의 대출이자 평균은 24.4%로 은행(9.8%)의 2.5배나 된다.

직장생활 11년째, 결혼 7년째 맞벌이인 김민수(가명ㆍ39)씨도 다중채무의 덫에 빠져 순식간에 '하우스푸어(집 가진 가난뱅이)로 전락했다. 그는 지난해 2억원을 대출 받아 서울 강북에 4억원대 아파트를 마련했다. 매달 내는 이자만 7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최근 암 수술을 받은 모친의 치료비 2,000만원을 카드 여러 개로 결제한 뒤 걱정이 태산이다. 대출 이자에다 카드 빚을 갚으려면, 당장 내년에 아이 유치원 보내는 것조차 막막한 탓이다.

김씨는 "겨우 집을 장만했는데 대출금리는 오르고 의료비는 천정부지여서 감당할 여력을 벗어났다"며 "집을 내놓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요즘 팔리지도 않는데다, 대출 갚으면 전세를 전전하는 '렌트푸어'밖에 더 되겠느냐"고 토로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김씨와 같은 하우스푸어는 157만 가구(가구원 수 549만명). 이들은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쓴다. 금리가 오르거나 경기가 더 나빠지면 언제든 다중채무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우리 사회 다중채무의 위험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금융 빚을 3개월 이상 갚지 못해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은 6월 말 현재 100만명(누적)을 넘어섰다. 빚 탕감을 위해 법원에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 채무가 면책된 이들도 2008년 이후 매년 5만명을 넘는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ㆍ경영연구실장은 "금리 인상 등으로 다중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 금융회사들도 연쇄 부실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금융권 전반이 정보 공유를 통해 다중채무자들을 상환능력 범위 안에 들어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권준상(동국대 북한학과 4) 인턴기자

■ 늘어나는 다중채무자… 전문가 해법은

빚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외려 필요한 자금이 원활히 공급돼야 신용사회라 할 수 있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이 곳에선 학자금을 빌려 대학 공부를 하고 대출 받은 돈으로 집을 산 뒤 20~30년 동안 갚아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 금융회사의 마구잡이 대출 등으로 부채를 계속 늘려갈 때 발생한다.

금융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가계 빚 총량이 1,000조원 시대를 맞았다는 사실보다 저소득층과 비은행권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서민들이 생계 유지를 위한 고육책으로 고금리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는 만큼, 경기가 나빠지거나 금리가 오를 경우 이들의 연체가 늘면서 금융회사가 부실해지고 실물경제에까지 여파가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가계 부실의 뇌관은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 받은 다중채무자다. 전문가들은 당장 이들의 추가 대출을 막아 부실화를 앞당기기보다, 금융회사 간 정보 공유를 통해 다중채무자 규모가 커지는 걸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금융산업ㆍ경영연구실장은 "상환 불능 위험이 높은 다중채무자에 대해 충당금 적립률을 더 높이거나 추가 차입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바람이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회복 제도의 활성화도 한 방법이다. 이헌욱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변호사)은 "다중채무자들은 과도한 빚 부담 탓에 생산활동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채무조정을 통해 이들의 빚을 덜어주고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결국 서민 가계 빚 문제의 근본 해법은 서민들의 취업과 창업을 독려해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고, 육아 교육 의료 등 가계에 큰 부담을 주는 필수지출을 국가가 일정부분 떠안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고도 성장기가 끝나 단기 소득을 올리기가 어려워진 만큼 장기적으로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대학 등록금, 교육비, 주거비 등 가계가 부담하는 필수 비용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 신용등급 완화 엇갈린 반응

'추락하는 신용등급엔 날개가 없다.'

신용등급의 세계에도 중력이 작용하는 걸까. "신용등급이 떨어질 땐 가속도가 붙지만 끌어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토로하는 사람이 많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빚 부담을 덜기 위해 최근 신용회복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한 우모(51ㆍ여)씨도 '저신용의 늪'에 빠진 경우다. 그는 "빚 규모가 커져 신용등급이 떨어지자 대출은커녕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워졌고, 그러다 보니 연체가 늘어나 신용불량 상태에 이르렀다"며 "돌이켜보면 저신용의 늪에 발목을 잡힌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개인 신용등급 하락의 주 요인은 '연체'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대출금 연체율이 상승세를 보인 올해 2분기 중 등급이 떨어진 사람의 비율은 가장 신용이 좋은 1등급에서도 전 분기보다 0.51%포인트 높아졌다(4.38%→4.89%). 물론 연체 빈도가 높은 하위 등급일수록 신용등급을 유지하기가 더 어렵다. 9등급이 최저인 10등급으로 떨어진 비율은 같은 기간 1등급의 7배인 3.57%포인트나 상승했다(3.24%→6.81%).

문제는 현재의 신용평가 체계에서 7등급 이하 저신용자들이 등급을 끌어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소득이 적어 신용등급이 낮은 탓에 대부업체나 사금융을 통해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다 보면 '연체→신용등급 하락'의 악순환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이런 구조적인 신용등급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신용평가사들이 등급 상향 조건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금융당국)는 지적이 나온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현실을 감안해 금융회사들이 신용등급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저신용자 대출 여부를 결정할 때 상환 능력과 함께 빚을 갚고자 하는 의지까지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와 금융회사들의 입장은 완강하다. 신용을 평가할 때 배려가 지나치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시장의 자원배분 체계를 왜곡, 금융사 부실은 물론 금융시스템 전체의 교란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 거래의 부실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신용등급을 더 철저히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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