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배의 환호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12일 제주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자 제주도는 물론 전국이 환호했지만 '관제 투표'에 자동전화 시스템까지 동원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적 망신을 살 위기에 처했다.
18일 제주도에 따르면 도가 뉴세븐원더스라는 단체가 주관하는 7대 자연경관 선정 경쟁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12월. 제주도는 국제적인 인지도 제고를 통한 관광 활성화를 위해 참여 선언과 함께 대대적인 국민 캠페인에 들어갔다. 도는 그 해 바로 범국민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곧 이어 범도민추진위원회도 출범시켰다.
하지만 뒤늦게 경쟁에 뛰어든 약점 때문에 중간 순위가 기대에 못 미치자 제주도와 제주ㆍ서귀포시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일단 도와 시의 가장 손쉽게 투입할 수 있는 공무원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도민들에게 전화 투표를 독려했다. 공무원들에게 표면적으로는 자율적이었지만 사실상 의무 할당 수준이었다.
특히 투표 마감 100일 전인 8월부터 강도가 강해졌다. 공무원들은 거의 공무를 놓다시피 하며 전화투표에 매달렸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자 마우스 클릭투표(클릭만 하면 투표로 이어지는 시스템), 동전자동투표기, 자동전화 시스템 등의 각종 제안이 터져 나왔다. 이중 마우스 클릭투표는 도입이 안 됐지만 나머지는 채택돼 은밀히 시행에 들어갔다.
특히 자동전화 시스템의 위력은 상당했다. 이는 공무원이 퇴근하는 오후 8시부터 출근하는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12시간 동안 자동으로 전화가 걸리게 하는 방식이다. 이 기계 한 대는 하루 2,160통, 두 달 간 가동하면 무려 12만9,600통의 투표를 하게 된다. 그러나 신성한 투표를 기계로 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투표 방식과 요금 납부에 문제가 생기면서 선정 자체가 취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주관사인 뉴세븐원더스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 행사를 개최한 게 확실해 선정 자체를 취소하는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만약 뉴세븐원더스가 제주의 선정을 취소하면 수입원인 전화요금을 못 받기 때문이다. 뉴세븐원더스가 지난달 돌연 최종 선정 발표를 2개월 간 미룬 것도 전화요금을 받기 위한 고육책으로 도는 보고 있다.
또한 의혹이 커지면서 제주도와 KT가 어떤 방법으로든 뉴세븐원더스와 전화요금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전화요금 납부 여부를 떠나 제주도와 KT는 '정체가 불투명한 외국단체의 상술에 당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각종 논란에 대해 우근민 제주지사는 "투표에 따른 전화요금은 고지서가 접수되면 도 예산으로 지불하겠다"며 "예산을 쓰는 만큼 자연히 의회에 보고가 돼 전화투표 수도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제주=정재환기자 jung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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