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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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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

입력
2011.12.1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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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연

바람이 눈을 쌓았으니 바람이 눈을 가져가는 숲의 어떤 하루가 검은 창의 뒷면에서 사라지고 강바닥에서 긁어 올린 밀랍 인형의 초점 없는 표정처럼 나무나 구름이나 위태로운 새집이나 모두 각자의 화분을 한 개씩 밖으로 꺼내놓고 그 옆에 밀랍 인형 앉혀놓고 여긴 검은 창의 경계 얼어 죽어라 얼어 죽어라 입을 떼도 들리지 않는 숲의 비명 뒷면들마다 그렇게 모든 뒷면들마다 입 맞추며 먼 강의 물속으로 가라앉으리

●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부하직원이고 착한 직장동료입니다. 오래 전부터 착한 딸이거나 착한 아들이었죠. 아이에게 화내는 일은 전부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인 좋은 엄마 혹은 좋은 아빠입니다. 저도 제법 착한 사람. 옆집 고양이나 강아지에게도 다정한 표정을 짓는 이웃이지요. 제가 키우는 식물들에게도 상냥한 편. 성실하게 물과 영양제를 주고 가끔은 섬세하게 잎도 닦아줘요. 그러나 모든 감정에는 뒷면이 있어요. 밀랍 인형의 초점 없는 표정으로 있고 싶은 날. 착한 부모 노릇도 잊고 좋은 동료 노릇도 관두고 화분에 물주기도 건너뛰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가까운 풍경들에 무심하고 무뚝뚝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있어 보는 날. 모든 관계들로부터 풀려나는 하루가 있어야 그 착한 사람이 숨을 쉴 수 있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단 하루라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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