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 이틀 전, 아이가 고민에 빠졌다. 짬짬이 생긴 동전들을 모아둔 곰돌이 저금통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돈을 꺼낼 수가 없다며 울상이었다. 돈을 왜 꺼내려고 하냐 물으니 아빠 선물을 사야 한단다. 그냥 엄마가 돈 줄 테니 그걸로 사자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은 할머니와 함께 칼로 저금통 아랫부분을 조금 뜯었다. 아이는 쏟아진 동전을 서너 주먹쯤 쥐더니 조그만 가방에 정성스레 담았다. 동전이 남아 있는 저금통은 할머니와 함께 다시 테이프로 꼼꼼하게 붙였다. 그제서야 아이 얼굴이 활짝 폈다.
"내가 자동차가 많이 있어도 또 자동차 사 달라고 할 때 아빠는 꼭 사줘요. 그러니까 아빠 생일에 내가 선물을 꼭 사줘야 해요!" 동전이 든 가방을 행여 떨어뜨릴까 봐 고사리손을 야무지게 쥐고 서서 종알종알 설명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시어머니 시아버지께선 "어이구, 이쁜 내 새끼!" 하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아이 말을 종합해보면 생일 선물을 사려는 아이의 마음은 장난감을 원하는 만큼 사주는 아빠에 대한 배려이고 보답이다. 또 엄마 돈 말고 굳이 자기 돈을 쓰겠다 고집한 건 아빠가 매번 아빠 돈으로 장난감을 사줬으니 자기도 그래야 공평하다고 생각한 게다. 46개월짜리 아이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고 뭐가 공정한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상대방을 위하는 이타심이나 배려심, 공정성 같은 개념이 첫 돌 직후부터 이미 생긴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5개월 안팎인 아이 47명에게 어른들이 음식을 공평하게 또는 불공평하게 나누는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주며 반응을 살폈다. 그런 다음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준 뒤 연구팀에게 도로 주겠냐고 의사를 물었다. 연구팀에게 장난감을 다시 건네준 아이들의 92%는 불공평한 음식 배분 장면을 유난히 집중해서 본 아이들이었다. 공정성에 대해 강하게 인식하는 아이일수록 남을 배려하는 성향을 보인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에는 태어날 때부터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내장돼 있다고 설명한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기들이 불공평한 음식 배분 장면을 집중해서 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공정성이나 배려심, 이타심에 대한 생각이 점점 변한단다. 공평하지 않아도, 남을 생각해주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이득을 얻는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뇌가 적응해간다는 것이다.
아빠 생일 파티 후 아이에게 내년 엄마 생일에도 아빠처럼 선물을 사줄 거냐고 물어봤다. 아이가 머뭇거리더니 "엄마는 장난감을 잘 안 사주잖아요!" 했다. 남편이 옆에서 역시 우리 아들 공평하다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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