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힉스 찾기 이후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힉스 입자의 흔적이 포착됐으니 새로운 입자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힉스는 우주 탄생을 설명하는 표준모형 이론에서 지난 50년간 발견하지 못한 유일한 입자. 다른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다고 해 '신(神)의 입자'라 불린다. CERN은 13일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실험 결과 힉스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 최소 95%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CERN은 16일(현지시간) 새로운 물질을 찾기 위해 LHC의 성능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향상시키겠다고 밝혔다. 광속으로 가속한 양성자 뭉치를 정면 충돌시키는 에너지를 현재의 두 배인 14TeV(테라전자볼트·1TeV는 1조 전자볼트)로 높일 계획이다. 양성자 수억 개가 들어있는 양성자 뭉치들의 충돌 횟수도 현행 초당 6억 번보다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 말 LHC 가동을 멈추고 2년간 공사를 한다. 출력과 충돌 횟수를 증강한 새 LHC는 2015년부터 가동에 들어간다.
LHC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지하 100m에 설치된 둘레 27㎞의 원형 가속기로 CERN이 약 7조원을 들여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실험장치다. 양성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기 위해 우주 공간(영하 271도)보다 2도 낮은 영하 273도로 내부를 유지해 마찰을 없애는 등 각종 최첨단 기술이 사용됐다.
CERN의 연구책임자 세르지오 베르톨루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얻는 데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교수는 "심해에 깊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생물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충돌 에너지를 높이면 이전에 없던 입자가 튀어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리학계에선 그 새로운 입자가 초대칭 입자일 것으로 보고 있다. 표준모형을 확장한 초대칭 이론에만 있는 입자다. 표준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17개 입자로 이뤄졌다. 물질을 구성하는 페르미온 12개와 우주의 여러 힘을 전달하는 보존 4개, 이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1개다. 그런데 초대칭 이론은 이들과 짝을 이루는 초대칭 입자 17개가 더 있어 우주를 이루는 입자가 총 34개라고 본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x2=9라고 할 때 x값은 ±3"이라며 "+3이 표준모형 입자라면 -3은 그와 대칭을 이루는 초대칭 입자"라고 설명했다. 초대칭 이론은 표준모형에서 어긋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1971년 도입됐다.
초대칭 입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물리학계에선 초대칭 입자가 1000GeV(기가전자볼트) 영역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출력을 높인 LHC를 이용하면 초대칭 입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힉스의 흔적을 잡은 에너지 영역대는 124~126GeV다.
암흑물질을 구성하는 게 무엇이고 암흑에너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나온다. 우주는 여러 물질로 이뤄져 있다. 그 중 인류가 관찰한 원자 같은 보통 물질은 전체의 4%에 그친다. 나머지는 암흑물질(23%), 암흑에너지(73%)로 채워졌다.
박 교수는 "암흑물질 발견은 우주를 이해하는 데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의미"라며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설명하지 못한 여러 현상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은하계의 중심에서 멀리 있는 은하가 생각보다 빨리 공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물리학계에선 은하계 중심에 있는 강한 중력과 암흑물질이 갖고 있는 중력의 영향을 함께 받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암흑물질을 발견하지 못한 탓에 아직까진 추정에 그친다. 손동철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암흑물질은 표준모형엔 없는 새로운 물질"이라며 "초대칭 입자가 암흑물질일 거라고 예상하지만 확실하진 않다"고 했다. 롤프 호이어 CERN 사무총장은 "힉스를 찾는 일은 시작일 뿐"이라며 "LHC가 어두운 우주에 처음으로 빛을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