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잖게 얘기하기엔 우리사회에 울분·분노 너무 쌓였다"

'나는 꼼수다'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나꼼수'는 방송도 아니고 언론도 아니다. 음원 파일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음악도 아니다. 그런데 수백만명이 즐겨 듣고 유명인들이 출연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게다가 '나꼼수'가 콘서트를 하면 수만명이 몰린다. 해외콘서트도 시작했다. 특이한 플랫폼으로 해외에서도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방송도중 욕설이 난무하고 무책임한 폭로를 해대면서 욕도 많이 먹는다.

하지만 아랑곳 않는다. 출연진도 특이하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주진우 시사인 기자 등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루저가 됐다'고 자학한다. 인기가 높은 만큼 비난도 많이 받는다. 이들 중 맏형은 정봉주(51) 전 국회의원이다. 지금 그의 인기는 '나꼼수' 덕분에 상한가를 치고 있다. 덕분에 그의 저서 <달려라 정봉주>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다. '대통령 꿈'을 꿨다는 그를 만났다.

-나꼼수에서 '씨발, 좇까, 씹새끼' 등의 거친 욕설을 남발한다.

"욕은 주로 김어준이 한다. 나는 거의 안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욕한 적이 있다. 공지영작가가 '조선일보에 대놓고 욕을 하면서 칭찬받는 정치인은 보다보다 처음 봤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 현상에 대한 카타르시스다. 우리 사회 상황은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워딩(wording)으로 표현하기는 너무 멀리 가 있다. 너무 점잖게 얘기하면 사람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 우리 사회가 빚어낸 퇴행적 결과다. 이 사회에는 정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울분과 분노가 많다. 오히려 욕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정치권에서 고마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울분이 정치권으로 폭발한다. 욕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욕이 가진 정치사회적 의미가 있다. 욕이 사람을 불쾌하게 하고 듣는 사람 대다수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다면 욕을 계속할 수 있겠나. 욕에 공감의 사회학이 담겨있다. 욕 한마디로 감정표현을 완벽히 할 때가 있다. "

-나꼼수 미국 콘서트는 왜 안갔나.

"대한 민국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나 보다. 여권이 10년 만기가 되었는데 여권을 내주지 않는다. 대법원에 BBK사건이 계류되어있다. 이 정권의 졸렬함과 포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원 검찰의 문제가 아니다. 재판에 계류되어 있어서 내 줄 수가 없다고 하는데, 재판 계류되어서도 외국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서 미국에 나가면 안들어 올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나꼼수의 즐거움은 뭔가.

"나꼼수 진행자들은 '루저'들이다. 나도 국회의원 떨어졌지만 다들 이 정권 들어서 줄소송을 당하거나 고초를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당신들이 무슨 루저냐. 절묘하게 아픈 곳과 아쉬운 곳을 잘 파고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음악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모인 교향악단이 만드는 음악보다, 교도소에 있는 죄수들이 모여서 만든 교향악단의 선율에 사람들이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인간의 본성에 패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 있기 때문이다. 루저들이 모여서 더 통쾌한 얘기를 해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즐거운 것이다. 이게 소통이다. 서로의 아픈 구석을 은폐하지 않고 드러내, '그래 우리는 루저다 어떡할래'라고 버틴다. 그 공감의 이면에 대중들은'저들은 저렇게 하는데 나는 왜 두렵게 살았지, 왜 쫄았지?'라는 자괴감을 갖는다. 그걸 우리가 열어서 터트려 주는 것이다. 패자들이 얘기하고 이를 듣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 콘서트도 오고 티셔츠도 사고 하는 것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주진우 시사인 기자 등에 대해 특징을 설명해달라.

"김어준은 방송질을 잘한다. 주진우는 디테일이 강하다. 김용민은 편집도 잘하고 착하다. 들어갈 때와 들어가지 않을 때를 잘 안다. 그런데 네 명이 영역이 다 달라 다툴 일은 없다. 공통의 먹이를 놓고 많이 먹겠다고 해야 다툼이 있는데 그런 것은 없다."

-나꼼수는 언제 끝나나.

"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이라 '가카'가 퇴임하면 끝난다. 여기서 '나'는 대통령을 의미한다. 이건 음원파일이라 SNS 규제도 안된다. 방송법도 적용이 안된다. 공중에게 무차별로 뿌려지는 것이 방송이다. 나꼼수는 파일이라 듣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서 듣는다."

-이런 방식의 아이디어를 낸 것이 특이하다.

"아날로그 매체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김어준과 사업을 구상했다. 처음에는 동영상 파일을 올려놓는 플랫폼을 구상했었으나 망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이게 터진 것이다."

-나꼼수가 돈이 되나.

"돈을 벌려고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콘서트는 한 번해도 2,000만원이다. 서버비용은 한 달에 수천만원이다. 티셔츠도 팔고 콘서트도 해서 서버 유지비용만 만든다."

-나꼼수가 언론이라고 볼 수 있나.

"말과 정보의 유통이 언론이다.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20세기의 고전적인 개념으로는 언론이 아니다. 법적인 측면에서도 언론은 아니다. 말 그대로 해적방송, 황색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를 언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도태고 낙후다. 20~30대는 인터넷 홈페이지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얻는다.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준 사람이 언론인인가 아닌가를 따지나. 나는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하루에 메시지가 500개가 들어온다. 여기서도 많은 정보가 있다."

-나꼼수가 특종을 제법 했다. 제보가 있었나 억측인가.

"제보 없이는 안 한다. 정보를 묶은 다음에 예측을 한다. 기본적인 데이터 없이 얘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 외에도 남북정상회담 인천공항매각 BBK사건 등 모두 근거를 갖고 얘기한 것이다. 제보를 가지고 재구성도 했다."

-나꼼수가 '진보의 조중동'이라는데.

"조중동이 나꼼수 출연자 신상털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기들의 영향을 뛰어넘는 더 큰 흐름이 생겼다는 두려움에서다.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조사를 해보니 나꼼수와 조중동의 영향력이 40%와 17%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그들이 맘먹으면 사회를 흔들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안 통한다. 내가 대놓고 욕을 해도 그들이 기사를 못쓴다. 민주당 전당대회 때 jTBC가 카메라를 들이대길래 '당신들은 나 찍을 자격이 없다'고 막았다. 예전 같으면 기자들이 가만 있었겠나. 가십이나 박스로 조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한번은 조중동이 김어준 집 문제를 건드렸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신상털기를 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당신들 털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화해 제스처가 들어왔다. 기자가 실수로 쓴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도 약점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쪽에서 지시 내리는 사람들보다는 유리하다. 그래서 신상털기 해보자는 거다. 그들 만한 취재력은 없어도 그들만큼 정보력은 있다."

-나꼼수는 어떤 상황인가.

"재기 발랄하게 까발리는 것은 다 보여줬다. 지금부터는 깨질 일 밖에 없다는 충고도 받는다. 인지도도 올라가고 내 스타일대로 까고 나가는 것이 이제는 안먹힐 수 있다. 나꼼수는 저쪽에서 다 보고 있다. 우리 것은 완전 노출되어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잘 해봐야 본전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계속 한다."

-나꼼수의 사회적 역할은.

"21세기는 영역이 붕괴되는 시기다. 나꼼수가 정치의 영역과 외연을 대폭 넓혔다. 나꼼수에서 나만 정치인이고 나머지는 언론인이다. 나는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교묘하고,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교활하게 대응했다. 나꼼수를 통해 팬카페 사람을 모은 것은 나밖에 없다. 조직을 한 것이다. 전국을 돌아보면 나꼼수 콘서트 뒤풀이에 200~300명이 모인다. 나꼼수의 열기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정치의 외형과 레벨 차원을 여러 가지로 바꿔놓은 것은 분명하다.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재미있어한다. 군대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발랄한 젊은이들을 재미있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 요즘 집회현장은 문화콘서트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다각적으로 넓혀놓은 것이다. 물줄기가 어디로 갈지는 나도 모른다. 굳이 방향을 잡아놓을 필요도 없다. '가카'를 보면 화무십일홍이다. 이처럼 맞는 교훈이 없다. 그렇게 누른 언론이 그대로 있겠나. 그러다 보니 나꼼수가 나온 것이다. 열기가 모이면 지지하는 방향으로 간다. 세상은 물 흐르듯 흐른다. 세상 변화하는 방향으로 함께 가자는 것이다."

-누나가 꿈 얘기를 했다는데.

"며칠 전에 누나가 와서 '너 대통령 되겠더라'고 했다. '꿈에 안철수가 나타나서 내 손을 잡으면서 대통령 하시라며 같이 손을 잡고 걸어갔다'는 것이다. 웃고 말았다. 우리 식구들이 선몽(先夢) 을 꾸는 편이다. 2004년에도 형이 출마하라고 해서 나갔다.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서 나를 출마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를 대권 주자로 몰고 가면 사람들이 웃는다. 근데 꿈에서 중국의 우루무치를 갔는데 4명의 전직 대통령이 문을 열어주면서 들어가라고 했다."

-대권에 생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한 순간이다. 물론 한 순간에 갈 수도 있다. 정치는 좀 덜하기는 하다.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이라는 팬 카페 뒤풀이를 해보면 알 수 있다. 나꼼수의 열풍이기도 하지만 정치인에게 싸인 해달라고 하고 인증샷을 요구하는 것은 노사모 때도 없었던 일이다. 노사모 회원들이 대중정치 열광정치의 효시들이었다. 카페 지역모임 한번 하면 300명 가까이 온다. 이들은 대놓고 권한다.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알았냐며 나를 몰아친다. 회원수가 16만8,000명이다. 하루에 회원 수만큼 방문자가 들어오고 통상 7만~8만번 클릭이다. 사람수로 보면 2만명 이상이다. 나꼼수의 영향이 크다. 여기 들어오는 부류는 언론을 외면하는 사람들, 정치에 관심을 끊은 사람들이다. 정치 무관심층이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많고 스스로 중립지대이면서 보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많다.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에 내가 대선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농담이라고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기사도 농담처럼 나가는 것이 좋다. 내가 준비가 되어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목표를 세우고 달리지만 결과는 나의 의지와는 별개다. 난 가벼운 사람이다. 욕심도 두려움도 없다. 지킬 것이 없어서 그렇다."

-'말'지에서 기자생활도 했다면서.

"벌써 30년 가까이 됐다. 당시는 '말'지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조선특위 동아특위 등의 언론운동단체의 기관지였다. 간사 겸 기자를 했다. 초창기에는 3~6개월에 한번씩 나왔다. 그때 당시에 '말'지가 일종의 '페이퍼 나꼼수'였다. 그때 기성언론들이 할말을 못하니 '말'지가 대신했다. 한번 발행하면 발행인이 10일간 구류를 살았다. 그래서 발행인이 매번 바뀌었다. 구류를 살 사람을 정해서 발행인으로 임명한 것이다."

▦나꼼수 정봉주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감방신세를 졌다. 대학졸업 후에는 도시빈민운동을 했고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기관지였던 '말'지에서 정시진이라는 필명으로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고 문익환 목사를 4년여 동안 수행하고 서울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기도 했다. 10여년 동안 학원을 운영하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2008년에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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