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학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구호는 구문(舊聞)이다. 5년, 10년 전에도 개강 때만 되면 어김없이 터져 나오던, 새로울 것 없는 구호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달랐다. 수 만명의 대학생과 그 부모들, 중ㆍ고교생들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고, 이에 한나라당은 명목 등록금 30% 인하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반값 등록금 시위를 기획하고 이끌어온 곳은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ㆍ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등록금넷)다. 등록금넷은 참여연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참교육학부모회 민주노총 교수노조 등 전국 550여개의 진보 성향 시민ㆍ사회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단체다. 반값 등록금 시위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올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5년 전인 2007년에 발족, 대학 내에서 등록금 인하 운동을 벌여온 단체다.
김동규 등록금넷 조직팀장은 16일 “2007년을 전후해 1년 등록금이 1,000만원이 넘는 대학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등록금이 더 이상 대학생만이 아닌 국민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퍼졌고, 정부에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등록금넷이 결성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독 올해 등록금 문제가 큰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 팀장은 ‘분노’를 꼽았다. 그는 “등록금 1,000만원에 생활비까지 매년 2,000만~3,000만원이 드는, 견딜 수 없이 비싼 등록금 자체에 대한 분노와,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 등을 설치해 반값등록금을 약속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이 이를 지키지 않은 데 대한 분노가 합쳐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값 등록금 운동은 지난 5월 29일 대학생 300여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기습 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일부 ‘운동권’ 학생들이 늘 해오던 등록금 투쟁 정도로 여겨졌지만, 공감대가 확산되며 시위 참가자 수가 5만명까지 늘어나 ‘제2의 촛불 시위’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첫 시위 후 한 달 남짓 지난 6월 23일, 한나라당은 “2014년까지 총 6조8,000억원의 재정과 1조5,000억원의 대학 조성 장학금을 투입해 30% 이상 대학등록금을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정말 ‘반값’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인천대(5%) 부산가톨릭대(9.8%) 인천가톨릭대(9.7%) 명지대(10%) 등도 등록금 인하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 변화들이 학생들의 실질적인 등록금 부담 경감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의 30% 인하안은 예산 등 구체적인 실현 계획이 정부와 전혀 조율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갈 것”이라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또 몇 개 대학이 등록금을 내렸지만 대세는 아니다. 인하폭도 ‘반값’에는 한참 못 미친다.
결국 지난 여름 반값 등록금 시위가 거세지며 일어났던 변화는 벌써 먼 기억이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출 신청서를 써야 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은 그대로다. 관심도 식으면서 현재로선 공감대를 넓혀 정치권을 압박할 만한 동력도 사실상 상실된 상태다.
등록금넷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내년에 다시 불씨를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김동규 팀장은 “총선과 대선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 의지가 있는 정당과 의원을 뽑아 등록금 상한제 등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데 바탕이 되는 법안들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라며 “내년을 ‘반값 등록금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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