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모토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직원들은 이 모토를 행동이나 근무에 지침으로 삼으면서 부훈이라고 불렀다.
이 부훈은 '정보는 국력이다'등으로 시대를 따라 변화했지만 아직까지 이보다 정보기관요원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이, 국가의 녹을 먹는 '직업 스파이'로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일하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의 신경조직망 역할을 하는 정보기관은 세계 어느나라에서고 없어서는 안 될 조직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선택된 엘리트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곳이다. 바로 이런 곳에 몸을 담고 국가안보의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기에 국정원 직원들을 임용할 때에도 다른 정부부처 직원들보다도 엄격한 자격기준이 적용된다. 이외에도 사상의 건전성, 신뢰성 그리고 보안성을 확인하기 위해 엄격한 신원조사를 받아야 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 직원법 15조에 따라 취임할 때 원장앞에서 '본인은 국가안전보장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발휘해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한다'라고 선서를 한다. 바로 이 애국심과 사명감 때문에 국정원 직원이 된 것이다. 이것 때문에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간첩을 잡기위해 밤을 새우고, 해외오지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직업과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자부심이 있어야 열정이 나오고, 열정이 있어야 성과가 나오는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의 징계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8월에 이어 이번에도 또 국정원 직원의 해임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물론 어느때는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하고 어느때는 징계심사과정이 위법했다며 징계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재판과정중에서 전ㆍ현직 직원들이 증인으로 출석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말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 편이 승소하고, 어느 편이 패소하는 가에 상관없이 이러한 문제는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명예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조직에 속한 직업인으로서 징계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징계를 받는다면 그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에 불복해 문제를 행정안전부의 소청심사위원회나 법원의 행정소송 재판으로 가져간다면 그것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기본가치와 모순되는 일이다. 국민에게 품격이 없는 볼썽 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일뿐더러 정보기관 요원들의 직업윤리에도 걸맞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행정소송에서 징계처분의 취소결정이 나오면 징계처분권자의 권위는 크게 훼손된다. 그러한 일이 자주 반복된다면 징계의 정당성이 의심받게 되고 지휘권에도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명약관하한 일이다. 이는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정보기관에서는 피해야 할 일이다.
징계대상자와 징계처분권자간의 괴리를 좁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징계대상자도 자신의 직업과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이고 징계처분권자도 징계권의 남용이나 일탈을 항상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결론은 정보기관의 내부문제는 가능하면 내부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원들이 마음으로 승복할 수 있는 복무규율과 조직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안광복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