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9급 관원들/김인호 지음/너머북스 발행ㆍ320쪽ㆍ1만6500원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조선의 관직이 있었다. 호랑이 전문 사냥꾼인데 지방에서 절도사가 군인과 향리, 역리, 노비 중에서 뽑아 쓰도록 했다. 목숨을 건 업무였기에 그만큼 보수가 두둑했고 출세할 기회도 있는 자리였다. 땅의 면적과 수확량을 측정하고 정부의 물품을 관리하는 실무자로 '산원(算員)'이라는 자리도 있었다. 고급 관리를 따라 다니며 세금 추징 등 실제 일을 도맡아 보는 관리로 백성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다.
광운대 교양학부 초빙교수인 저자가 방대한 실록과 문집에서 20여개의 옛 하급 관직을 찾아내 그 일의 성격과 관리들의 행태 등을 설명했다. 관청 심부름을 맡아 본 소유(所由), 고위 관리의 앞길을 인도한 구사(丘史), 왕을 보좌한 중금(中禁), 시간을 알려준 금루관(禁漏官), 외교의 최일선에 섰던 통사(通事), 궁궐 요리사 숙수(熟手). 여진이나 일본과 전쟁 중 고급 정보를 빼내오는 간첩, 궁중 잔치에 탈을 쓰고 등장하는 연예인인 광대 얘기도 나온다. 이들이 얽힌 과거 시험지 유출 사건, 살인사건, 회계장부 조작과 사기 사건 등 다양한 사건들도 함께 소개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왕과 사대부 중심으로 계급 구분이 엄격한 조선 사회에서 이들은 분명 차별 받는 처지이면서 또 한편에서는 차별하는 존재였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많았지만 권력의 끝자락에서 자신보다 약한 민중을 수탈하거나 부정을 저지를 때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 지방을 망라하면 상당한 규모였을 이들이 떠받친 "조선 왕조의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규모와 짜임새를 가졌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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