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법정. 성시경과 신승훈 등 인기 가수의 노래를 만들어 온 유명 작곡가 김형석씨가 참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그는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방청객 앞에서 여러 가지 노래를 직접 연주하며 불렀다. 그가 주로 부른 노래는 가수 아이유가 부른 'someday'와 R&B 싱어송라이터 김신일씨가 작곡한 '내 남자에게'. Someday는 인기 가수이자 유명 프로듀서인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작곡한 노래로 KBS 드라마 '드림하이'의 OST 중 하나다.
MBC의 유명 연예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 등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김형석씨가 법정에 나온 이유는 평소 돈독한 관계인 박진영의 부탁 때문이었다. 이날 재판은 지난 7월 김신일씨가 표절을 이유로 박진영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따라 열린 것이다. 김형석씨는 상당 시간 동안 두 노래가 왜 표절이 아닌지, 김신일씨가 주장하는 표절의 근거가 왜 사실이 아닌지를 음악적으로 분석해 재판부에 전달했다.
표절을 두고 펼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김신일씨가 박진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의 이목이 한꺼번에 법원으로 쏠렸다. 박진영은 SM, YG와 함께 3대 엔터테인먼트로 꼽히는 JYP의 대표이자,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가수. 김씨가 미국 버클리 음대를 나온 유학파 R&B 아티스트로 수 십장의 앨범 작업을 해왔고, 4장의 정규 기획 앨범을 낸 실력가로 알려지긴 했지만 박진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마이너리티(minority)'라는 게 음악 관계자들의 평이었다. 대중 음악계의 영향력과 위치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김씨가 박진영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사실에 이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김씨의 표절 주장은 확고했다. 'someday'는 자신이 작곡해 가수 애쉬가 부른 '내 남자에게'와 후렴구의 4마디 등 코드 진행과 멜로디는 물론 편곡 구성까지 유사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법원에 제출한 소장을 통해 "강단에 있는 교수 등 여러 전문가들을 통해 표절이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며 "표절시비를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JYP 측이 이를 무시해 결국 소송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내가 표절이면 너도 표절이다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초기부터 "결론 내리기 쉽지 않은 다툼"이라고 털어놨다. 그만큼 양측의 주장은 팽팽했다. 직접 법정에 나와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던 김신일씨와 달리 박진영은 직접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반박은 꼼꼼하고 치밀했다.
특히 "김씨의 주장대로라면 김씨의 곡 '내 남자에게'도 표절"이라고 반격함으로써 재판부를 더욱 고민에 빠뜨렸다. 박진영 측은 그 근거로 R&B나 힙합, 모던 락에 80년대 소울팝, 디스코 등 복고적 장르까지 아우르는 가스펠 가수 커크 플랭클린(Kirk Franklin)의 2002년 발표 곡 '호산나(Hosanna)'를 제시했다. 재판장인 강영수 부장판사는 "박진영씨 역시 두 곡이 유사하다는 데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다"며 "다만 표절의 대상이 되는 김씨 곡 역시 (저작권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창작성이 결여돼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창적 창작물이 아닌데 표절을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골리앗의 일격이었다.
이르면 1월 말 승패 갈릴 듯
고민에 빠진 재판부는 양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3번의 조정 기일을 열었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돼 모두 무산됐다. 김씨는 소송을 제기할 당시부터 "표절 여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돈이 아니라 명예가 걸린 문제"라며 자존심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표절 자체를 부인하는 박진영과의 합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낮았다.
재판부는 1월 12일을 다음 재판 기일로 예정했다. 여전히 합의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이날까지 박진영과 김신일씨의 주장이 대립된다면, 변론을 종결하고 다음 기일에 판정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재판부는 양측에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참고인을 모두 대동하라고 통보했다. 이날을 최후 격론으로 여기고, 제대로 다퉈보자는 뜻이었다. 대단한 법정 콘서트가 예고된 셈이다.
일반적으로 변론종결일로부터 선고 기일까지는 2~4주가 소요된다. 따라서 이들의 법적 다툼은 이르면 내년 1월말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패배하는 쪽에서는 상대에 대한 명예훼손 책임까지 짊어질 가능성이 높아 새로운 소송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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