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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김길태 사건, 그후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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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김길태 사건, 그후 2년

입력
2011.12.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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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얼마나 무서운 지 아세요. 흉칙한 저 대문이라도 빨리 뜯어내던지…."

지난 14일 오후 부산 사상구 덕포1동 골목길. 3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앙칼진 목소리로 한 마디 쏘아붙이곤 휙 돌아섰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이른바 '김길태 사건'의 현장 중 한 곳인 일명 '파란 대문 집'. 지난해 2월24일 사이코패스 김길태(34)가 여중생 이모(사건 당시 13세) 양의 시신을 유기했던 물탱크가 옥상에 놓여져 있던 바로 그 집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철거가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도 않는 빈집인 채로다. 대문에 붙어 있는 출입금지 푯말과 함께 '출입하는 행인은 범법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스티커가 오히려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영화나 소설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단골 모티브인 빈집. 이 곳 덕포1 재개발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안고 살고 있었다. 이 곳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살해현장. 무당이 살았던 집이라 해서 주민들에게는 무당집으로 불리는 곳이다. 내부를 다 허문 파란 대문 집과 달리 무당집 내부는 당시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합판으로 모조리 가려진 창문을 보니 빈집에서 짐승을 앞에 두고 느꼈을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대로 전해오는 듯 했다. 사건 이후 모두 이사를 가 역시 빈집이 돼 버린 이 양의 다세대 주택 옆 공터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이양 또래의 여자아이가 몸을 구부린 채 한가로이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주민 최모(44)씨는 "딸 가진 부모들은 매일 가슴을 졸이며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덕포1 재개발지역의 주민은 모두 467세대. 미로 같은 골목을 끼고 닥지닥지 붙어있는 500동 안팎의 주택 가운데 19동이 빈집이다. 사건 당시에는 이보다 많은 31동이 빈집이었지만 그 사이 무허가 건물인 12동만 헐렸다. 19동은 빈집이지만 엄연히 소유주가 있는 곳이라 관할 사상구청이나 경찰이 마음대로 허물 수가 없다. 결국 재개발사업을 속도를 내야 해결될 일이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로 조합이 설립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사업 진척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민들이 믿을 구석은 경찰 치안밖에 없다. 사상경찰서는 사건 발생 후 덕포 1동을 치안강화구역으로 설정해 방범초소를 신설했다. 의경 16명을 4개 조로 편성해 교대로 야간 순찰을 하고 있다. 직원들도 순번을 정해 2시간에 1번씩 함께 순찰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한 주민은 "그나마 사건 전보다 밤에 경찰들이 자주 보여 마음이 조금 놓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빈집이 남아있는 한 주민들의 공포를 씻을 수 없다. 주민 김모(68)씨는 "언제쯤 우리 동네가 달라질 지 모르겠다"며 "주민들이 밤길이 무섭다고 역정을 내도 공무원들은 '재개발 문제는 조합이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는 법 타령만 하니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라고 비난했다.

어른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잘하던 아이, 설레는 마음으로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천진난만한 아이를 앗아갔던 빈집. 미로 같은 골목 사이로 칼 바람이 몰아치는 그 곳에는 여전히 공포가 있었다. 김길태는 1심 사형선고 후 '계획적 범행으로 단정짓기 힘들고 한 사람만 살해했다'는 항소심의 무기징역 감형으로 경북 북부 제1교도소(옛 청송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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