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면은 '마음카운셀러'란 이름의 상담실을 운영합니다. 일상 속 고민이나 힘든 마음 이야기를 precare@hk.co.kr로 보내주시면 대신 전문가에게 상담해드립니다.)
2005년 중학생 두 딸과 아내를 호주에 보냈지요. 흔히 말하는 '기러기 아빠'에요. 6년 전 아내가 아이들과 호주로 가겠다고 했을 때 당연히 반대했어요. 하지만 영어교육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아내의 주장에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죠. 아내가 처음에 가져간 돈은 현지 정착비와 학비 등으로 1년여 만에 다 썼다더군요. 요즘은 제가 매달 돈을 보내야 합니다. 혼자 집에 들어오면 이렇게 떨어져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아무도 없는 집이 싫어 없는 술자리도 제가 일부러 나서서 만들죠. 평소 저녁은 그렇게 술자리에서 때우고 있어요. 6개월 뒤면 아내가 돌아온다는데, 그것도 멀게 느껴지네요.50대 직장인 남성
자녀 유학을 위해 가족을 외국에 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는 기러기 아빠는 이미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 돼버린 지 오래죠. 함께 식사를 하며 정을 나누는 한국인의 특성상 기러기 아빠들의 고독감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은 홀로 밥상을 마주할 때일 거에요.
마침 술이 있으면 잠시나마 외로움이나 허전함을 잊을 수 있지요. 그게 익숙해지면 점점 마시는 양도 늘면서 습관성 음주로 발전해요. 실제로 최근 국내 한 병원이 기러기 아빠 80명을 조사한 결과 52%가 술을 마시면서 자제를 못한 경험을, 45%가 필름이 끊긴 경험을, 41%가 소주 1병, 맥주 4병의 과음을 한 경험이 한 달에 한 번 이상이라고 답했어요.
당연히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마련입니다. 주변에 술을 제어해줄 친척이 없으면 알코올의존증으로 진행될 위험도 크지요. 가족의 빈 자리는 술 말고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으로 채워야 합니다. 습관처럼 혼자 자주 술을 마신다면 우울증의 초기 신호일 수도 있어요.
자신의 음주 형태가 전형적인 '기러기 음주'인지 확인해보세요. 다음 항목에서 3개 이상 해당하면 기러기 아빠의 습관성 음주 행태라고 의심할 수 있어요. 5개 이상이면 병원을 찾아 상담해보길 권합니다.
△집에 가면 저녁을 혼자 먹는다 △술 생각이 난 적이 주 3회 이상이다 △술을 주 3회 이상 마신다 △최근 가족과 연락이 뜸해졌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술집에 간 적 있다 △술 마시고 필름 끊긴 적이 최근 한 달간 한 번 이상이다 △현재 생활에 가장 어려운 점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에 무기력할 때가 있다 △집에 혼자 있기 싫어 억지로 술 약속을 잡으려고 한 적이 있다 △송금 날짜가 두려워진다.
상담 조성훈 경희대 한방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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