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한국형 컨슈머리포트'가 선보인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업무계획 발표를 통해 소비자단체들과 함께 온라인 컨슈머리포트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품목을 선정, 객관적인 상품평을 제공함으로써 합리적인 소비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단체들이 제 몫을 못하는 상황이라 한국형 컨슈머리포트가 정부 의도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국내 소비자단체의 역할은 정부 용역을 받아 상품조사를 대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근 소비자단체들이 발표한 태블릿PC 성능과 가격, 변액유니버셜보험 수익률, 프리미엄 우유 성분조사 등이 대표적인 상품 비교정보인데, 예외 없이 공정위 예산 지원으로 이뤄졌다.
소비자단체들이 소비자보호운동을 주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보조적 역할에 머물고 있는 주원인은 주요 단체 수장들의 장기집권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가입한 10개 소비자단체 중 5곳의 회장이 10년 이상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한 단체 회장은 무려 30년이 넘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소비자단체 회장들이 수십 년간 자리만 지키다 보니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고 발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조차 "회장들이 고령이어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스마트폰,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첨단 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과거 마인드로는 소비자 주권을 챙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내년 1월 출범하는 한국형 컨슈머리포트가 벤치마킹 대상인 미국 컨슈머리포트에 비해 상당히 조악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관련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공정위가 내년에 컨슈머리포트 생산을 위해 배정한 소비자단체 지원금은 2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미국 컨슈머리포트의 경우 LCD TV 성능조사에만 5억원을 들인 것을 감안하면, 한 개 품목 조사도 어려울 전망이다. 단체들의 역량이 떨어지는데다 활동비도 부족한 셈이다.
공정위는 이런 내용을 포함, 대기업-중소기업-소비자로 이어지는 경제 주체들의 경쟁을 통해 상생발전과 상호감시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의 내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내년에도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감시활동에 주력하기로 했다. 총수 일가의 출자구조, 중소기업 진출업종, 내부거래 비중 등을 분석한 자료를 공개해 계열사 확장과 일감 몰아주기를 자연스럽게 억제할 방침이다. 특히 대기업의 복잡한 출자구조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지분도(持分圖)를 만들어 공개한다. 대기업 소속 광고 및 건설사들이 계열사들에게서 사업을 수주해 수수료만 챙기고 중소기업에 위탁하는 '통행세' 관행에 대해서도 규제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백화점 시장 규모(24조원)를 뛰어넘은 전자상거래(27조8,000억원)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인터넷 쇼핑몰과 상품 정보를 담은 소비종합정보망도 구축할 계획이다. 아울러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소비자단체의 소송 비용을 지원하고, 사업자가 스스로 소비자 피해구제 등 합당한 시정방안을 제시하면 공정위가 심의를 신속하게 종결하는 동의의결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계층별 소비자보호대책도 마련됐다. 젊은 층을 위해 온라인게임 표준약관을 제정하고 유학ㆍ여행을 집중 감시분야로 선정해 피해를 예방하기로 했다. 요양시설 표준약관 수립, 상조업체 현장점검 등은 노년층을 겨냥한 대책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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