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마다 대개 권장도서 목록을 갖고 있지만, '서울대 100권'은 읽어야 한다면서 결국 아무도 안 읽을 책들의 리스트처럼 느껴집니다. 이에 비해 숭실대 목록에는 고전과 함께 현대 국내 저자들의 저술이 같이 들어 있고 이를 계속 업데이트해 손이 가는 값진 책을 제시하고 있어 좋아 보입니다."(김경집 가톨릭대 교수)
올 한 해 국내에서 출판된 단행본 중 좋은 책을 가려 뽑는 책 잔치인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의 기본 바탕도 이 같은 기준이었다. 이달 초 예심을 통과한 51종의 책을 검토한 심사위원들은 12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3시간 넘게 진행한 본심에서 저술로서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으면서 사람들이 실제로 그 책을 읽어서 생각과 삶을 살찌울 수 있는 책을 고르느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저술 학술 부문 수상작인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은 그런 기준에 부합하는 책이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한 가지 주제를 잡아 풀어나가는, 글쓰기의 매력, 학술적인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김경집 교수는 "그간 정조에 대한 긍정적인 거대담론 일색이었던 데 반해 이 책은 미시사이면서 정조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균형을 잡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평등, 자유, 권리> 는 요즘 우리 사회에 시의적절한 이 개념들을 역사, 철학, 정치학의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접근한 노력이 높게 평가 받았다. 평등,> 정조와>
교양 부문에서는 이 워낙 눈에 띄는 저작이어서 수상작 결정에 어려움이 없었다. "읽으면서 행복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파인만의 글 솜씨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다"(김경집) "힉스 등 입자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무엇보다 시의적절한 책이다"(김석희 번역가) "과학 교양서를 국내 저자가 이만한 두께로 내는 경우는 드물다"(이동철 용인대 교수) 등 호평이 이어졌다. 과학 책이 저술 부문 상을 받는 것은 반세기를 넘는 한국출판문화상 역사에서도 이례적이다. 국내 과학자들의 저술 역량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종 수상작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저술 부문 심사에서 가장 논쟁이 된 것은 정민 한양대 교수의 책 2종이었다. 학술 부문의 <다산의 재발견> 은 새로운 자료를 찾아 발굴한 노력은 평가하면서도 "내용이 비슷한 저자의 다른 책들이 있다"거나 "해제 성격이 강한 글들"이고 "발굴한 자료를 한 가지 주제로 꿰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교양 부문의 <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 는 베일에 가려진 우리 차문화를 자료로 고증한 시도가 높이 평가 받았지만 아쉽게도 에 영예를 양보해야 했다. 새로> 다산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를 번역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한 데는 책 자체의 무게와 함께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그 동안 해온 그리스 로마 고전 원전 번역 작업의 공로도 한 몫을 했다. 김석희씨는 천 교수의 번역에 "보배 같은 작업"이라는 찬사를 보냈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출판상을 받아도 벌써 받았어야 했다며 높이 샀다. 펠로폰네소스>
편집 부문은 예년에 비해 수작이 적어 고민이었지만 "현암사의 그동안의 노하우가 집적된"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이 상을 받을 만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어린이ㆍ청소년 부문의 '청소년을 위한 토론학교' 시리즈와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는 책 내용도 좋았지만 부모,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적합한 '소통의 매개체'로서도 호평을 받았다. 멋지기> 지혜로>
해외 도서 판권 수입을 주로 하는 국내 저작권 중개업체에서 일하다 올해 초 독립한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에게 백상특별상을 주는 것에 대해 처음에 다소 주저하는 심사위원도 있었다. 그를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 번역 출간할 해외 출판물의 계약금 높이기 경쟁 등에 열 올리는 에이전트 일반의 행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의 성공이 보여주듯 "우리 문학을 체계적으로 해외에 알리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기에 그 일에 힘써온 이 대표가 수상할 만하다는 데 공감하는 심사위원들이 다수였다. 이 대표의 수상자 결정은 저작권 중개업체들이 국내 출판문화 발전에 더 기여해달라는 출판인들의 바람까지 담은 것이다. 엄마를>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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