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들기는 여러 사람의 협동 작업이다. 그러다 보면 의견 충돌도 나는 법.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은 달랐다. 저자 김도경(44ㆍ강원대 건축학과 교수), 책임편집자 박민영(34ㆍ현암사 편집2팀), 북디자이너 임진성(36ㆍ디자인 아이엠 실장)씨는 "서로 뜻이 잘 맞아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행복하게 작업했다"며 "책 만들면서 이런 경험은 드문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혜로>
한국 전통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밝혀 그 합리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 책은 지면 위에 다시 옮겨 지은 집이다. 마치 완성된 레고를 뜯어보듯 초석과 기단부터 기둥과 장식에 이르기까지 한국 건축의 구조를 낱낱이 해체해 꼼꼼히 살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동원한 자료가 무려 1,200여 종. 궁궐과 사찰, 성곽과 고택, 탑과 부도, 개인 한옥과 사라진 건물 터에 이르기까지 내로라 하는 한국 건축물 200여 곳을 샅샅이 훑은 사진만 700여 컷, 건축물의 겉모습에 가려진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평면도와 단면도, 투시도와 앙시도 등 도면이 500여 장이다. 저자가 직접 찍고 그렸다. 그런데도 복잡해 보이는 느낌이 전혀 없이, 글과 딱 맞게 어울려 알차면서도 아름다운 책이 되었다. 한국 건축에 관한 책이 풍경과 감상 위주의 에세이나 딱딱한 학술서가 대부분인 것과 달리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책이기도 하다.
"처음 원고를 받고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다 담나 걱정했다"는 편집자 박씨는 "워낙 원고가 훌륭한 데다 디자이너 솜씨도 훌륭해 물 흐르듯 책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석한 현암사 편집주간 김수한씨가 거들었다. "보기 드물게 완벽한 원고였어요. 저자가 전체 얼개와 틀을 만들어 왔는데, 구성을 어쩌면 이렇게 했을까 싶게 감탄스러웠죠. 책이 집을 짓는 것이라면 저자가 제공한 자재와 설계도가 완벽했던 셈이에요."
이 책은 지난해 겨울 원고를 받아 연초부터 4개월 작업 끝에 나왔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치밀하고 정성스런 손길이 책의 구석구석에 역력하다. 본문 각주의 활자 크기만 놓고도 한참 의논했다고 한다. 주석 표시 기호를 뭘로 할까? 점? 숫자? 별? 글자 어깨에 붙일까 떼어 놓을까? 색깔은? 각주 설명은 어디에 넣을까? 행 간격은 어느 만큼? 등등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북디자인을 한 임씨는 "한국적 여백미를 살린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죠. 많은 도판이 눈에 거슬리지 않게 블랙과 화이트 색상을 많이 쓰고 까만 바탕에 얹어 집중도를 높였죠."
저자 김 교수가 출판사에 주문한 것은 "분칠하지 말고 단단한 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평생 지니고 싶은 책, 교재로도 쓸 수 있는 책,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를 원했어요. 원고는 제 거지만, 편집은 전적으로 맡겼죠. 편집자하고는 내내 전화 통화만 하다가 책 나온 뒤에야 만났고, 북디자이너는 오늘(15일) 처음 만났어요. 얼굴 한 번 안 보고도 서로 존중하며 작업을 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대만족입니다."
김 교수는 25년간 연구와 강의를 병행해온 학자이자 한국 목조 건축 실무에 10여년 간 종사해 설계와 시공에 능통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론과 실제를 아우른 책을 쓸 수 있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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