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늘고 말도 많아졌다. 군 제대 후 많이 부드러워진 듯하다고 하자 "원래 저 유쾌해요"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얼굴에 여유가 늘어난 것은 분명했다. "아! 이 답변은 후지니까 취소"라는 등 농담을 아끼지 않는 점도 예전과 달랐다.
국내 뮤지컬 무대의 제왕이자 영화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블루칩인 조승우(31)를 15일 오후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만났다. 전날 뮤지컬 '조로' 공연 때문에 얼굴엔 피로가 깔려있었지만 그는 매번 웃음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조승우는 국내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두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1980년대 맞대결을 그려낸 '퍼펙트게임'의 개봉(22일)을 앞두고 있다. 조승우는 9월 세상을 떠난 최동원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는데 "역시 조승우"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의 열연으로 최동원을 스크린에 되살린다. '퍼펙트게임'은 예비역 조승우의 첫 번째 영화다.
어린 시절 투수가 되고 싶어 "난생 처음 지하철 타고 한 초등학교에 가 테스트까지 받았다"는 그에게 '퍼펙트게임'은 운명과도 같은 영화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최동원 이야기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고 가슴이 요동쳤다"고 말했다. "부산사투리를 어떻게 할까 싶은 걱정도 떠올랐지만 바로 출연 결정을 했다"고 했다. 선동열 역의 양동근 캐스팅도 그의 제안과 설득으로 성사됐다. 조승우는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해태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양동근 모습이 그려졌다. 캐스팅 시한 하루를 남기고 겨우 연락된 양동근과 부랴부랴 계약 사인을 하게 주선했다"고 전했다. 그는 "부산 사투리는 (김)윤석 형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승우는 "촬영 전 박희곤 감독이 전해준 600쪽 분량의 방대한 자료로 인간 최동원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고 했다. 그는 "승부에선 냉정하지만 유니폼을 벗으면 명랑하고 쾌활한 지극히 인간적인 그를 상영시간 때문에 다 담지 못했다"고도 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던 분이 주목 받지 못하는 선수들의 은퇴 뒤 삶을 위해 선수협의회를 주도한 모습만으로도 대단하죠. 영화에선 승부욕과 근성, 고집스러운 면만 부각돼 아쉬워요."
그는 감독 등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인 최동원 특유의 투구 동작을 재연하려고 노력했다. "투구 전 모자와 안경, 스타킹 등을 매만지던 버릇까지도 그대로 따라 했는데 화면에는 반영이 안 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엔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을 지역감정으로 연결시키려는 정치권의 음모가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관중들은 15회까지 최선을 다한 두 선수의 투혼에 감명 받아 상대방 팀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며 갈채를 보낸다. 조승우는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독재 아닌 독재시대에 한방 먹여주는 통쾌함이 있다"고 흐뭇해 했다.
손가락이 갈라지면 본드로 붙여서 마운드에 올랐던 최동원의 근성이 혹시 자신에게도 느껴질 때가 있냐고 묻자 그는 "요즘이 그렇다"고 답했다. 뮤지컬 '조로' 공연 중 영웅의 화려한 활약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그는 "고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안전장치 없이 밧줄 타고 내려오는 여러 장면을 대역 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연기인데다 대역이 해도 관객이 눈치 못 챌 장면이지만 배우로서 욕심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전 무대에서 모든 걸 토가 나올 정도로 보여주려고 해요. 잘 못해서 문제이지… 전 앞으로도 영화보다 뮤지컬을 좋아할 듯해요. 영화는 흥행과는 별도로 후회하지 않을 작품을 하고 싶어요. 드라마요? 100% 사전제작에 완벽한 대본이 있다면 안 할 리 없죠. 지금처럼 사흘을 날 새서 찍는 제작 시스템에서 드라마 하면 누군가의 멱살을 잡을지도 몰라요. 저 좀 살려달라고(웃음)."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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