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22년 동안 박태준 회장과 나는 사업보국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길벗이었다. 신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서슴없이 '철'이라고 대답한다. 군인의 기와 기업인의 혼을 가진 사람이다. 경영에 관한 한 불패의 명장이다. 우리의 풍토에서 박 회장이야말로 후세의 경영자들을 위한 살아있는 교재로서 귀한 존재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생전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13일 타계한 박 명예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의 리더십을 막연히 '1970년식'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한국경제가 선진국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지금 상황에서 위기의 돌파해법으로 다시 한번 음미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박태준, 정주영 회장 같은 산업화 1세대들의 삶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오늘날 기업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를 지근거리에서 봐왔던 많은 인사들은 박태준 리더십을 ▦완벽주의 ▦도전과 혁신 정신 ▦보국(報國) 세 가지로 요약한다.
박 명예회장은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항상 "나는 사장이 아니라 전쟁터 소대장이다. 전쟁터 소대장에겐 인격이 없다"고 말했다.
1972년 제강공장 건설 현장을 돌아보던 그는 지반을 다지기 위해 박은 파일이 지상에 쏟아지는 콘크리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박 회장은 현장감독에게 "저게 파일이냐 담배꽁초지, 부실공사는 적대행위다. 우리가 어떤 각오로 제철소를 짓고 있는지 모르느냐"며 재시공을 지시했다. 이는 지금도 '포스코 사전에 부실공사는 없다'는 교훈으로 남아 있다.
그의 도전정신은 포항제철 완공한 후 더욱 빛을 냈다. 1기 건설착공 3년 2개월만인 73년6월9일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를 준공, 첫 쇳물을 생산하는 역사적인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기쁨도 잠시 이내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운영해야 적자를 내지 않을 수 있을 까'.
그 때부터 그는 제철소 운영방식을 완전히 뒤바꿨다. 기존 제철소들은 제품이 생산되는 순서에 따라 제선→제강→압연공장 순으로 건설하는 포워드(Forward) 방식을 택했으나, 박 회장은 제품생산공장부터 건설하는 백워드(Backward) 방식을 선택한 것. 포스코 관계자는 "생산공정이 짧은 압연 및 제강공장을 먼저 지었다. 수입한 반제품으로 완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생기는 이윤으로 나머지 공장건설에 투자하면서 제철소를 완성해 나갔다"고 말했다. 재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일청구권자금으로 공장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정상적 건설과정을 밟을 수 없는 만큼 역발상의 접근을 했던 것이다.
그의 평생 신조였던 '제철보국(製鐵報國)'에서 나타나 듯 그에겐 항상 국가가 먼저였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이 군대를 필요로 했을 때 박 회장은 장교로 투신했다. 한국이 기업인을 찾았을 때 박 회장은 기업인이 됐다. 한국이 미래비전을 필요로 할 때 박 회장은 정치인이 되었다. 박태준의 삶에는 나라에 봉사하는 것이 끊임없는 지상명령 이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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