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타계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영전에 애도와 추모의 헌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맨땅에서 철강신화를 일으켜 경제 근대화의 주역으로 우뚝 선 그는 범국민적으로 기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자본과 기술, 경험이 전혀 없이 영일만 허허벌판에서 세계 일류의 일관제철소를 만들어 낸 것은 기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도 덕분이지만 박태준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국제차관단의 차관 공여 철회로 제철소 건설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대일청구권 자금 전용 발상을 내고 성사시켰다. 제철소 건설과정의 숱한 일화는 포스코 신화가 그의 집념과 추진력의 산물임을 잘 보여준다.
제철보국과 함께 포스코 정신의 근간으로 이어져 온‘우향우’정신은 제철소 건설 당시 고인의 처절한 각오에서 비롯됐다. 모래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늘 직원들과 함께했던 그는 “조상의 피 값으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고 독려했다. 그에겐 대충이나 적당히가 통하지 않았다. 1977년 3기 설비가 공기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도 송풍설비 구조물 공사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공정이 80%나 진행된 구조물을 폭파하고 다시 짓게 했던 일은 유명하다.
납품 비리나 청탁을 철저히 배격했고, 소유ㆍ경영 분리 신념을 끝까지 지켜 단 한 주의 포스코 주식을 받지 않은 경영철학과 청빈한 삶의 자세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포항공대(1986년)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87년)을 설립함으로써 산학연 연구개발 협동 모델도 구축했다. 이런 철학과 혜안, 집념과 열정, 추진력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포스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때 정계에 진출, 집권당의 대표를 지내고 국무총리 직을 맡아 국가의 새로운 비전을 펼쳐보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철강강국을 일궈낸 그의 업적이 바랠 수 없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대로 조국 근대화에 바친 84년 그의 일생은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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