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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낚고, 낚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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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낚고, 낚이는 세상

입력
2011.12.1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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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년 전이다. 건강 검진을 하면서 처음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당시 검사를 한 검진의는 "갑상선에 결절이 보인다. 혹시 모르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별 증상은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모대학 종합병원 내분비내과를 찾아가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온 날 담당 의사는 애매한 진단을 내렸다. 그는 "(조직검사가) 완전히 악성 결절(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상도 아니다. 1년 뒤에 재검사를 하자"고 했다. 암은 아니라는 말에 한시름 놨지만, 그 때부터 늘 마음 한 켠엔 불안감이 자리잡았다.

이듬해 같은 병원에서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했지만 그 의사는 또 "내년에 다시 해보자"며 1년 전과 같은 말을 했다. 만 2년째가 된 이달 초 다시 그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이번엔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돌연변이 검사까지 해보자"고 권했다. 걱정이 돼 40만원의 추가 비용을 내고 돌연변이 검사까지 했다.

그러나 의사의 검진 소견은 2년 전과 같았다. '이번만은 확실히 알고 가자'는 생각에 의사에게 "불안해서 안되겠다. 암인지 아닌지 분명히 알려 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보통 수술은 결절이 15㎜이상이어야 하는데 현재 6㎜에 불과하고, 예후도 악성일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지난 2년 간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기쁜 마음에 의사인 친구에게 그간 담아뒀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 왈, "낚였구만. 요즘 종합병원 의사들도 매년 진료 수입을 몇 %씩 늘려야 해. 괜찮다니 (병원에) 기부했다고 생각해"하는 것이었다. 보이스피싱도 아니고 낚이다니…. 친구 병원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최근 갑상선 조직검사가 남발돼 건강보험공단이 '결절 크기가 10㎜미만이면 조직검사를 하지 말라'고 병원 측에 권고한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

기자의 경우는 아니길 바라지만, 요즘 의료 현장에선 과다 진료, 과다 검진, 수술 남발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다. 병원들이 의술보다 상술에 더 신경을 쓴 탓이다.

실제로 40대의 한 지인은 척추전문병원에서 열흘 사이에 디스크 대수술을 두 차례나 받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수술을 하면 바로 허리 통증이 사라질 것이라는 의사 말에 솔깃해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가 통증이 재발해 1주일 만에 재수술을 했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 측은 어처구니 없게도 3차 수술을 권했지만 이 친구는 거부하고 장기 물리치료를 택했다.

의료계의 한 지인은 "요즘 병원들은 돈벌이가 될 '블루오션 질환'을 찾는 게 당면 과제"라며 "지금도 전문병원마다 블루오션이 있는 데 정형외과는 디스크와 무릎연골 수술, 치과는 임플란트, 피부과는 아토피, 안과는 라식ㆍ라섹, 내분비내과는 당뇨병과 갑상선 등이 소위 돈 되는 질환으로 통한다"고 귀띔했다. 디스크나 임플란트 전문 병ㆍ의원이 늘어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강과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 앞에선 누구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절대 상업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에 상술이 판치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들다지만 적어도 교육ㆍ의료ㆍ법조계만은 성역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송영웅 사회부 차장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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