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13대 종정(宗正)에 동화사 조실이자 대종사인 진제(眞際ㆍ77) 스님이 추대됐다.
종정은 조계종단의 법통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종단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법어를 통해 불가와 세속에 가르침을 전하지만 종무 행정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조계종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 등 종정 추대위원 25명 가운데 23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정 추대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진제 스님을 제13대 종정에 추대했다. 임기는 내년 3월 26일부터 5년이다.
진제 신임 종정은 "산승(山僧)은 앞으로 우리 종단의 화합과 수행을 위해 이판(理判)ㆍ사판(事判) 스님들과 원로스님들의 고견을 받들고, 동양정신문화의 정수인 간화선(看話禪ㆍ화두 참선법)을 널리 진작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별도로 마련한 소감문을 통해 "각자 자기의 직분에 성실한 가운데 마음 닦는 수행을 생활화하자"며 "우리 인류정신문화의 정수인 이 선법(禪法)을 수행한다면 모두가 나의 본래면목을 찾음으로써 이 현실세계에서 모든 인류가 상대를 초월한 절대적인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감문 말미에 '대지여우인막측 수래방거역비구'(大智如愚人莫測 收來放去亦非拘ㆍ큰 지혜를 가진 이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함이며 진리의 전을 거두어 놓는 데에도 걸림이 없음이로다)라는 게송(偈頌)도 내놓았다.
1934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한 진제 스님은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승(禪僧)이다. 경허(鏡虛), 혜월(慧月), 운봉(雲峰), 향곡(香谷) 스님으로 이어져온 선불교의 법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진제 스님은 중국 당나라 때 '남설봉 북조주(南雪峰 北趙州)'에 빗대어 인천 용화사 송담(松潭) 스님과 함께 '남진제 북송담'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작 스님 자신은 "남진제니 북송담이니 하는 것은 형상이나 말에 떨어져서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겸손해 하고 있다.
진제 스님은 스무 살 때인 1954년 해인사로 출가, 해인사 조실과 조계종의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石友)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ㆍ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인가?)'이라는 첫 화두를 석우 스님에게서 받고 동화사와 상원사, 각화사, 묘관음사 등 여러 선원에서 오로지 참선에만 정진했다.
은사 석우 스님이 입적하자 33세 때인 67년 묘관음사에서 주석(主席)하고 있던 향곡 스님을 찾아가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와 '일면불 월면불(一面佛 月面佛)'이라는 화두를 다시 받고 5년여 동안 씨름한 끝에 이를 풀어 선불교 선맥을 잇는 법손(法孫)으로 인정을 받았다. 화두의 관문을 돌파한 뒤 읊은 오도송(悟道頌)에는 그의 깨달음이 녹아있다.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 정상 무너지고 벽력 같은 일 할에 천만 갈등 흔적이 없네.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진제 스님은 이후 산중 스님들의 전유물이었던 참선법을 모든 사람들이 깨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71년 부산 도심에 해운정사를 창건하고, 선원도 개설했다. 이후 45년 간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참선법을 지도해 선의 대중화, 생활화에 앞장섰다.
한국 간화선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진력하고 있다. 진제 스님은 2002년 부산 해운정사에서 중국ㆍ일본 선의 대종장(大宗匠)들을 초청해 '국제무차선대법회'을 개최했다. 올해는 미국 뉴욕의 리버사이드교회에서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간화선 세계평회대법회를 열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선의 대중화를 위해 선어집 <돌사람 크게 웃네(石人大笑)> , <선 백문백답> , <고담녹월> , <석인은 물을 긷고 목녀는 꽃을 따네> 등의 책을 펴냈다. 최근에는 영문법어집 를 발간하기도 했다. 석인은> 고담녹월> 선> 돌사람>
진제 스님은 "수행 정진이야말로 수행자의 본분인데, 지금의 한국 불교는 이 점이 다소 소홀하고 모든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데도 좀 게으르다"며 한국 불교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앞으로의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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