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중음악계의 핵심 키워드는 '아이돌'과 '한류'다. 음원 차트는 거의 매주 아이돌 가수의 곡으로 채워졌고, 뉴스는 연일 아이돌 그룹들이 이끄는 한류 소식을 전했다. 올 한해 대중음악 산업에서 아이돌이 차지한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외형을 떠나 질적인 측면을 들여다 보면, 올해는 인디 음악이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움직인 한 해였다. 10cm는 주류와 인디의 벽을 허문 대표적인 밴드다.
디지털 음원이 대세라지만, 음악을 평가하는 잣대는 역시 음반이다. 올해 발표된 국내 음반들 가운데 대중음악 전문가들이 주목한 앨범은 무엇일까. 제작자, 음악 PD, 평론가 등 15명이 꼽은 올해 최고의 앨범과 실망스러웠던 앨범 5개씩을 소개한다.
올해 최고의 앨범으로는 인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이 꼽혔다. 15명 중 7명이 이 앨범을 추천했다. 2008년 싱글 '싸구려 커피'로 데뷔해 인디 음악계 무서운 신인으로 떠오른 이들은 1집 '별 일 없이 산다' 이후 2년 4개월 만에 발표한 이 앨범으로 다시 한번 음악적 재능을 입증했다. 수록곡 '우리 지금 만나' '그렇고 그런 사이' 등이 고른 사랑을 받았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은 비대중적인 방법론으로 가장 대중적인 결과물을 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며 "60, 70년대 포크 록에서 사이키델릭 록, 신스 팝까지 고전적인 장르들을 동시대의 형태로 격상시켰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가장 실망스런 앨범 공동 4위(3표)에 선정되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기존의 정체성을 상실해 아쉬움이 남는 앨범"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에 꼽힌 앨범들은 모두 인디 록 계열이란 점이 눈에 띈다. 1인 프로젝트 밴드 검정치마의 두 번째 앨범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과 그룹 유앤미블루 출신의 이승열이 4년 만에 내놓은 3집 'Why We Fail'이 각각 5표를 받아 공동 2위에 올랐고, 싱글 '아메리카노'와 MBC '무한도전'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10cm의 1집 '1.0'이 4위를 차지했다. 이어 인디밴드 칵스의 'Access OK'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우정모텔'이 3표씩을 받아 공동 5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올해 인디 계열의 음악적 완성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장기하와 얼굴들, 10cm, 검정치마 등은 주류와 경계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인디 진영에서 양질의 앨범이 가장 많이 나온 해였다"고 말했다.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앨범으로는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브아걸)의 4집 'Sixth Sense'가 8표를 받아 첫 손에 꼽혔다. '최악'이 아니라 높은 관심에 비해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브아걸의 3집은 '아브라카다브라'의 빅 히트로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큰 성과를 냈으나, 4집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브아걸의 앨범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면 그건 3집의 완성도로 인해 기대가 높아서일 것"이라며 "작곡이나 사운드에서 전체적으로 과잉이 느껴진다. 브아걸의 음악적 미덕을 놓쳤다"고 평했다.
이어 소녀시대의 3집 'The Boys'(7표)와 최근 발매된 아이유의 2집 'Last Fantasy'(6표)가 각각 2, 3위에 올랐다. 소녀시대의 앨범은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이지만 음악적인 평가는 꽤 부정적이다. "대중적으로 눈에 띄는 곡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소녀시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앨범 제작에 최고의 인력이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앨범은 의욕과잉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발매 즉시 음원 차트를 싹쓸이한 아이유 2집이 실망스러운 앨범에 꼽힌 것은 의외로 여겨질 만하다. 김영혁 소니뮤직코리아 뉴비즈니스팀 본부장은 "아이유의 재능이나 참여한 스태프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이유는 제작자의 기획에 갇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비슷한 앨범을 다시 냈다"고 말했다.
이어 각각 3표를 받은 4개 앨범이 공동 4위에 올랐다. 델리스파이스의 7집 'Open Your Eyes'와 김동률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발표한 'Kimdongryule', 2PM의 2집 'Hands Up',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이 기대를 배반한 앨범으로 호명됐다.
◆설문에 응답해주신 분들(가나다 순)
강태규 뮤직팜 이사, 김작가 음악평론가, 김영혁 소니뮤직코리아 본부장, 김병찬 플럭서스뮤직 대표, 박은석 음악평론가, 배순탁 음악평론가ㆍMBC '배떼痔?음악캠프' 작가, 이민희 음악평론가,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 이진영 키위뮤직 이사, 임대진 미러볼뮤직 이사, 임진모 음악평론가, 윤성현 KBS 라디오 PD, 차우진 음악평론가, 황건희 SBS 라디오 PD, 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
고경석기자 kave@hk.co.kr
■ 2011 대중음악 키워드 송 5
아이돌 전성시대, K팝의 세계무대 약진, 실력파 가수들의 재발견…. 2011년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변하는 키워드를 5곡의 히트곡으로 치환해 풀어봤다.
1. 티아라 'Roly-Poly'/ 아이돌 전성시대
올해 가요계는 아이돌로 시작해 아이돌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에서 한국 가수가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한 올해 연말 음원차트 1위(이하 가온차트 1~11월 집계 기준)는 누굴까. 주인공은 티아라다.
2. 현아 'Bubble Pop!'/ K팝 해외진출
K팝의 인기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북미, 남미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현아의 'Bubble Pop!'이 미국 대중음악 전문지 '스핀(Spin)'에서 2011년 최고의 노래 9위로 꼽혔다는 점은 K팝을 바라보는 해외 음악계의 시각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시사한다.
3. 임재범 '사랑'/ '나는 가수다' 열풍
MBC '나는 가수다'는 아이돌이 지배하는 가요계에서 실력파 가수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준 것이다. 임재범은 '나가수'가 낳은 최고의 스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가수'가 좋은 가수, 좋은 음악을 대중에게 상기시켜준 점은 높이 살 만하다.
4. 10cm '아메리카노'/ 인디의 반란
인디 듀오 10cm의 인기는 아이돌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인디 음악이 충분히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아메리카노'는 연말 음원차트 59위, '무한도전'에서 하하와 부른 '죽을래 사귈래'는 100위에 올랐다. '인디계의 아이돌'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성과다.
5. 허각 'Hello'/ 오디션 스타탄생
지난해 Mnet '슈퍼스타K 2' 우승자인 허각은 에이큐브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고 정식 데뷔곡 'Hello'로 주간 음원차트는 물론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범람해도 눈에 띄는 '가수'가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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