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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독일 프랑크푸르트

입력
2011.12.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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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숨결과 현대가 공존… 유럽의 중심에 서다

비행기 내리면 'Arrival(도착)'과 'Transit(환승)' 화살표 가운데 으레 환승 쪽으로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곳.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유럽을 몇 번 다녀왔다면 한 번쯤 거쳐 갔겠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인강 풍경 또는 공항 창문 밖의 지평선이 프랑크푸르트에 대한 기억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가봤다고 말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안 가본 곳도 아닌 유럽의 관문,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독일 중부에 있는 같은 이름의 도시와 구분하기 위해 정식 명칭을 이렇게 쓴다.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족의 통로'라는 뜻). 요점은 이 도시를 그냥 스쳐가는 건 실수라는 거다. 웃돈 좀 주고 스톱오버(중간 경유지 체류)를 해서라도 거닐어 볼 만한 매력이, 이 도시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겨울은 해가 짧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짧았다. 12월 둘째 주, 하늘은 오후 네 시 무렵 어둑해지기 시작했고 뼛속까지 시린 으슬으슬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전차에서 내리자 찬바람이 훅, 호흡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코끝부터 허파까지 촉감으로 깨닫게 한다. 자연히 드는 생각. '이 긴긴 밤 독일 사람들은 겨울잠 자는 곰처럼 지내겠지.' 하지만 추측은 곧 깨졌다. 웅성웅성. 고층 빌딩숲과 마인강으로 둘러싸인 뢰머 광장을 찾아가는데, 달뜬 표정의 사람들이 줄지어 앞뒤로 붙는 바람에 인파에 파묻혔다. 이들은 바이나흐트마르크트(Weihnachtmarkt), 영어로 하면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유럽의 다른 유서 깊은 도시들처럼 프랑크푸르트도 11월 말이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는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중심인 뢰머 광장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카이저돔 대성당과 황제들의 초상이 걸린 옛 시청 사이의 공간으로 중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2차 대전 때 잿더미로 변했다가 수십 년에 걸쳐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복원했다 해도 옛 도시의 정취가 그대로일 수는 없을 텐데, 크리스마스 마켓의 분위기만은 14세기 말부터 이어져온 흥겨움 그대로란다. 키 낮은 지붕의 노점들이 다닥다닥 모여 커다란 우산 같은 장을 이루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떠들고 마시며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따뜻하고 얼근한 걸 마셔야만 할 것 같은 추위와 분위기. 독일인들은 훌륭한 걸 고안해냈다. 적포도주에 물을 타서 따뜻하게 데운 글루바인이 그것이다. 머그잔에 담아주는 글루바인은 코를 박고 향기를 맡으면 약간 어질어질해지는데, 혀에 닿는 순간 그 어지러움은 무척 친근한 느낌의 들큰함으로 바뀐다. 곁들여 먹는 것은 길쭉하게 생긴 전통 소시지. 뭉근하게 술을 달이는 향과 고기 통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훈김, 그리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내는 부드럽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표정이 섞여 겨울 프랑크푸르트의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뢰머 광장에서 세계적 금융기관들이 밀집한 신시가지를 지나면 머지 않은 곳에 괴테하우스가 있다. 중앙역을 기점으로 삼으면 역 앞 카이저거리를 따라 네 블록 가면 나온다. 독일인들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생가이자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다. 괴테는 80세 넘도록 살았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장수다. 그런데 출세작 을 발표하고 대표작 를 쓰기 시작한 건 불과 스물 몇 살 때의 일이었다. 그가 아직 부유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던, 세상 걱정 없이 사랑과 문학에 몰두하던 도련님 시절이었다. 이 집 4층의 작은 방에서 샤를로테와 메피스토펠레스가 탄생했다.

이 집 역시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가루가 됐다가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가구 등 괴테의 유품은 공습 당시 다른 곳으로 옮겨 화를 면했다. 괴테가 쓰던 책상과 의자, 육필 원고, 작은 피아노, 그릇과 세탁 도구 등이 전시돼 있다. 대문호에 대한 우러름보다 인간 괴테의 성장 배경을 엿볼 수 있는 게 이 집을 찾아가는 이유다. 1층 부엌, 한국어로 녹음된 안내 프로그램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대부분은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는데 괴테의 집엔 지하수 펌프가 있었습니다. 한 번 이불 빨래를 하면 100개가 넘는 시트를 빨아야 했습니다… 괴테는 어린 시절 접시를 던져서 깨뜨리며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마인 강 남쪽의 작센하우젠. 이곳 특산인 사과주(에벨바이)와 독일식 족발이 천하 일품이란 얘기를 오래 전부터 들은 터였다. 그런데 가는 길에 인상적인 장면과 마주쳤다. 'Wir sind 99%(우리는 99%다).' 유럽중앙은행 앞에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의 유럽판인 오큐파이 프랑크푸르트 시위대를 만났다. 시위대의 텐트촌은 히피 스타일의 평화로운 캠핑촌 같았다. 고층 빌딩에서 나온 말끔한 샐러리맨과 시위대는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같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 먹었다. 낯설지만 왠지 부러운 모습이었다. 말하자면 프랑크푸르트는 이런 곳인 듯했다.

중세 유럽의 정취와 괴테에 대한 콧대 높은 자부심에 2차 대전의 상흔과 글로벌 금융자본의 수뇌부, 그들에 대항하는 아나키스트의 혈기마저 뒤섞여 공존하는 '지극히 유럽적인' 곳, 하지만 사통팔달로 뚫린 교통 덕(탓)에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유럽의 한복판. 프랑크푸르트에서 갈아 타는 비행기를 탄다면, 한 번쯤 비행기를 놓치더라도 이 유럽의 심장을 느껴보고 떠날 일이다. 되도록 글루바인 향기 진한 겨울철에.

프랑크푸르트=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매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직항편을 운항한다. 국내에 취항하는 대부분의 대형 항공사가 프랑크푸르트로 연결되는 운항편을 갖고 있다.

●대중교통 탑승과 주요 관광시설 할인 혜택이 포함된 프랑크푸르트 카드(1일권 8.9유로, 2일권 12.9유로)를 이용하면 알뜰하게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둘러볼 수 있다.

●이층버스로 프랑크푸르트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스카이라인 투어' 버스가 2009년부터 운행되고 있다. 10개국어(한국어 포함) 오디오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 2012 프랑크푸르트 축제

유럽의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에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연중 각종 메세(견본시)와 국제회의, 예술 행사가 열린다. 그래서 어느 계절에 찾아가도 대형 스포츠 이벤트나 예술품 전시회, 민속 축제 가운데 하나쯤은 즐길 수 있다.

2012년 예정된 프랑크푸르트 예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제프 쿤스의 전시다. 쿤스의 작품을 소장한 리빅하우스와 쉬른미술관이 각각 조각 작품과 회화 작품을 나눠 전시한다. 4월엔 '빛과 빌딩'을 주제로 한 '루미날레 12'가 진행돼 프랑크푸르트의 빌딩들이 예술적인 조명에 휩싸이게 된다. 8월엔 라인강 남쪽에 줄지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박물관축제를 연다.

6월엔 시내 여러 곳에서 독일 합창축제, 8월엔 오랜 전통의 사과와인 축제가 열린다. 독일 국민주인 사과주뿐 아니라 사과와 다양한 음료를 혼합한 칵테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10월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개최된다. 11월 마지막 주부터 다시 열릴 크리스마스 마켓은 괴테가 "인간적인 것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한 유럽의 대표적 연말 축제.

7월엔 국제 철인 3종 경기인 아이언맨 유럽 챔피언십, 10월엔 BMW 프랑크푸르트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자세한 정보는 프랑크푸르트 관광청 홈페이지(www.frankfurt-tourismus.de)에서 얻을 수 있다. 문의 주한 독일관광청 (02)773-6430.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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