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동(東)과 서(西)에서 전쟁의 비극을 몸으로 겪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13일(현지시간) 미 뉴욕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날 뉴욕 퀸즈커뮤니티칼리지 시어터에서 한국의 이옥선(85) 이용수(83)할머니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에셀 캐츠, 한느 리브만 할머니가 조우했다. 동시대에 벌어진 전쟁 참상을 겪은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포옹한 뒤 얼굴을 어루만지며 반세기 전 상처를 어루만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이라 우리의 아픔을 잘 알 것으로 믿는다”며 캐츠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할머니들이 일본군과 나치독일의 반인륜 범죄를 증언하기 시작하자 수백명의 청중은 숨을 죽였다. 이옥선 할머니는 “1942년 일제에 끌려가 중국 옌볜 등지에서 위안부 피해를 당하다 해방을 맞았다”며 “위안부 생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다가 2000년 6월 한국을 떠난 지 58년 만에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앞서 미 의회에서 증언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15세에 대만의 일본군에 끌려가 학대와 고문을 당한 이야기를 전한 뒤 “여러분이 저희에게 투쟁할 힘을 달라”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캐츠는 “어린 시절 폴란드에서 나치의 ‘유대인 사냥’으로 부모와 형제들이 처형되는 장면을 지켜봤다”며 “이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난 뒤 공포 속에서 숨어 살아야 했다”고 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리브만은 “독일군도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갔지만 전쟁범죄를 사과했다”면서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과 분노, 고통의 세월을 감내한 공통의 경험을 가진 이들의 만남과 증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것으로 보인다. 행사 참석자들은 일본이 잘못을 사죄해야 한다는데 공감을 표하고, 청원서 서명과 청원동영상 제작에 참가했다.
행사를 마련한 퀸즈커뮤니티칼리지 홀로코스트센터와 뉴욕ㆍ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는 청원서와 동영상을 16일 유엔주재 일본 대표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앞서 홀로코스트센터에선 일본군 위안부 전시회를 열어 미국 주류사회에 일본군 전쟁범죄를 폭로했다. 이번 행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항의하는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은 것을 기념해 마련됐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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