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명예회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본통이다. 우리 경제가 본궤도 오르는 과정에서 한일관계에 관한 한 박 명예회장의 영향은 지대했다.
그는 애초 일본에서 성장했고 공부했다. 6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까지 입학했다. 일본어에 정통하고 일본문화가 몸에 밴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이런 그에 대해 일각에선 "너무 일본적이다" "사무라이, 군국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만한 일본통은 없었고, 포항제철소 건설과정부터 이후 양국 경제교류까지 가장 큰 막후 역할을 해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일본이 없었다면 포항제철은 없었을지 모른다. 용광로를 지을 수 있는 돈도 대일청구권자금에서 나왔고, 제철소 운영도 일본 신일철로부터 배웠다.
양국 재계의 교류채널을 구축한 것도 박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1981년 사단법인 한일경제협회를 창립했는데, "이제부터는 일본 재계와 대등한 관계에서 교류하게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초대 협회장을 맡아 세지마 류조 이토추상사 회장,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 이마이 다카시 신일본제철 회장, 야마구치 노부오 아사히화학 회장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거물들과 우리 기업인들의 만남을 수 차례 주선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게이단렌 사이의 교류도 이때 이후 본격화했다.
정계에 입문한 뒤에는 국회 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연맹 소속 국회의원들이 후쿠다 다케오, 다케시다 노보루 전 총리 등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1983년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과정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조그마한 인연이라도 만들어서 일본 정ㆍ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야스오카 마사히로, 일본철강연맹 이사장인 이나야마 요시히로 야와타제철 사장, 나가노 시게오 후지제철 사장 등을 잇따라 만났고, 지바 사부로 노동상, 이치마다 히사토 자민당 해외경제협력위원장 등 정계 지도자들도 찾아갔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 명예회장을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의 문화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쉬는 때조차도 한국에 무엇인가를 가져가려고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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