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하반기는 한국 정치사에서 격랑과 태풍의 시기였다. 이른바 '안풍'(安風ㆍ안철수 바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정치 격변의 방아쇠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당겼다.
온건 합리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던 오 전 시장은 서울시 무상급식 도입이 현실화되면서 강경한 정치적 드라이브를 걸었다.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은 서울시 의회가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오 전 시장은 시정 협의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올해 1월 무상급식 정책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를 공식 제안했다.
오 전 시장의 이런 행동에 '복지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기 위한 승부수'란 평가도 있었지만 "아이들 먹거리 문제를 놓고 과잉 대응을 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보수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 따른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오 전 시장은 주민투표를 앞두고 '차기 대선 불출마'선언과 함께 '시장직 연계'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8월 24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투표율 미달로 패배했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보궐선거 패배를 우려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사퇴를 만류했지만, 오 전 시장은 투표 이틀 만에 "즉각적인 사퇴로 책임을 다하겠다"며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사퇴에 대해서는 '무리한 결정'이란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의 사퇴에 따라 '서울시장 보궐선거'란 멍석이 깔리자 정치권의 움직임은 숨가쁘게 진행됐다.
먼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검토 소식이 전해지자, 안 원장은 일약 정치권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이런 기세에 힘입어 안 원장에게 자리를 양보 받은 박원순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뒤 본선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는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까지 감행해 한나라당의 심각한 위기 사태를 초래했다.
당 안팎에선 "오 전 시장의 사퇴가 안철수 바람을 유도해 결과적으로 기성 정치권인 여야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불신 받는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여야가 모두 변신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다.
오 전 시장은 시장직 사퇴 이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전셋집을 구해 칩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리 디스크 발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2,3개월 후 몸 상태가 나아지면 외교 견문을 넓히기 위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한 측근은 "오 전 시장은 신념을 갖고 순수한 의도로 주민투표를 추진했다"면서 "그는 합리적 중도를 설득하면 주민투표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여권에서 판을 이렇게 만든 오 전 시장을 원망하고 있지만 미지의 적에 대해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당장 내년은 아니더라도 오 전 시장이 필요한 시점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한 5년 뒤 쯤… "이라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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