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많은 양'을 뜻하는 숫자가 '100만'인 시절이 있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의미가 퇴색하긴 했지만 이 숫자의 상징성은 여전하다. 아직도 이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상품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밀리언셀러'일 때가 많다.
보험업계에서도 밀리언셀러는 오르기 힘든 반열이다. 상품당 10만~15만건만 팔려도 성공으로 여겨지고 상품당 수명이 3.5년에 불과할 정도로 수많은 상품들이 명멸하는 시장에서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상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자녀를 대상으로 한 보험상품이 대세였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신한생명 '신한아이사랑보험'은 2004년 7월 출시 뒤 지난달 말까지 161만6,000건이 판매됐다. 한 번 가입으로 자녀의 평생보장이 가능하도록 상품을 꾸준히 보완해온 결과라는 게 신한생명의 설명이다. 최고 30세까지던 보장기간을 최근 100세까지 늘려 어린이 질병과 재해 사고는 물론 당뇨ㆍ고혈압 등 성인 질환까지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현대해상 '굿앤굿어린이CI(치명적질병)보험'도 판매고가 146만3,000건에 달한다. 현대해상 측은 "성인이 되기까지 자녀에게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험에 대비할 수 있으며,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고 성공 배경을 분석했다. 부양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하게 다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거나 보험금을 매년 1회씩 중도 인출해 자녀교육비 등으로 쓸 수 있도록 한 점도 이 상품의 매력이다.
동양생명도 어린이 보험의 강자다. 2000년 1월 업계 처음으로 어린이 보험을 내놓았는데, 현재 보장성 상품 3종, 연금ㆍ저축성ㆍ변액유니버셜ㆍ방카슈랑스 전용 상품 각 1종 등 총 8종으로 다양화했다. 이들을 다 합쳐 127만6,000건을 판매고를 올렸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생명보험업계 최초로 100세 보장 어린이 보험 '수호천사꿈나무자녀사랑보험'을 출시하는 등 새 상품 개발로 경쟁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통합 보험' 중에서도 밀리언셀러가 나왔다. 생보업계 첫 통합 보험인 삼성생명의 '퍼펙트통합보험'은 2008년 9월 출시된 뒤 3년여 만에 170만 가입자를 끌어 모았다. 종신보험과 CI보험, 실손의료보험 등을 합쳐 각각의 상품에 따로 가입하는 경우보다 보험료를 낮춘 게 특징이다. 독창성을 인정 받아 '개발이익보호권'(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면서 업계의 통합 보험 확산을 주도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보험 1건으로 본인과 배우자, 자녀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인기 비결"이라고 전했다.
동부화재가 2004년 4월 판매를 시작한 '프로미라이프 컨버전스통합보험'은 '밀리언셀러 클럽'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업계 최초의 장기ㆍ자동차ㆍ일반보험 결합 상품으로 95만 건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 업계에서 가장 많은 144가지 보장으로 선택지를 넓힌 것도 강점이다.
주력 상품이 결국 빛을 보는 경우도 있다. AIA생명이 2000년 12월에 출시한 '원스톱암보험'은 암보험의 고전이다. 한때 손해율이 치솟으면서 2009년 판매가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작년 9월 '뉴원스톱암보험'이란 이름으로 다시 출시됐고, 현재까지 누적 판매고는 무려 198만6,000건이다. 라이나생명의 주력 상품인 치과보험은 3년여만에 84만건 팔려 밀리언셀러 등극을 앞두고 있다.
보험개발원 김용주 생명보험서비스실장은 "가정마다 자녀의 수가 적어지면서 자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게 어린이 보험 가입자가 증가로 이어졌는데, 신한생명 등이 틈새시장을 선점했다"며 "통합 보험의 인기는 보험을 여러 개 들 정도로 여유가 있지만 관리를 귀찮아하는 고객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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