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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종편이 갓난아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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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종편이 갓난아기라고?

입력
2011.12.1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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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성(종편)채널 4개가 일제히 개국한지 2주가 됐다.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법을 근거로 탄생한 종편들은 첫날부터 어이없는 방송사고를 내면서 예상대로 준비 덜 된 '졸속 개국'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선정성, 편파적 보도도 우려했던 대로였다.

스스로 입증한 졸속 개국

당연히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종편과 그 대주주인 신문들은 이런 문제들에 철저히 침묵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인다고, 잘못은 쏙 빼놓은 채 자화자찬하는 것도 모자라 고만고만한 시청률 갖고 서로 "내가 1등"이라고 우겨대는 것까진 그렇다 치자. 정당한 비판에 대해, 언론학자까지 나서 내놓은 반박이 참 어처구니없다.

국립대 교수인 한 언론학자는 최근 종편 대주주인 한 신문의 고정칼럼에서 "이쯤 되면 비판 내지 조롱을 넘어 종편의 태생 자체에 대한 저주"라면서 "이제 갓 태어난 아이에게 악랄한 욕설을 퍼붓고 그 숨통을 끊으라고 부추기는 꼴"이라고 개탄했다. 또 다른 종편의 대주주인 한 신문도 다음날 사설에서 "이제 갓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한" 종편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악담과 왜곡을 일삼는 행태는 개탄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종편 비판을 싸잡아 '악담'과 '저주'로 몰아붙이며 내놓은 '갓난아기'론은 일찍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써먹은 논리다. 그는 종편을 갓난아기에 빗대며 "걸음마 단계까지는 돌봐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종편들은 황금채널 등 갖가지 특혜를 챙겼고, EBS 수능채널 등 힘없는 채널들은 줄줄이 밀리거나 아예 빠지는 불이익을 당했다.

세상에 이런 '갓난아기'가 있을까. 저잣거리에서 힘자랑깨나 하던 장정이 배냇저고리 갈아입고 요람에 누워 "저, 갓난아기거든요"하고 우기고, 그 부모는 한 술 더 떠 볕 잘 드는 자리 달라, 특수분유 내놔라 하며 생떼를 쓰는 형국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쯤 해서 지금의 종편이 도대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옛 방송법에도 종편은 등록만 하면 되는 여느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달리 방송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근거 규정이 있었다. 다만 지상파에 버금가는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하기에는 방송환경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실제 사업자 선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종편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07년 초다. 전ㆍ현직 언론인과 학자 등이 모여 방송위에 "참여와 개방에 바탕한 새로운 공론장 건설과 미래 성장 동력인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종편 도입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들은 종편이 갖춰야 할 요건으로 외주 제작 중심, 사회통합을 위한 공론장, 소유ㆍ경영ㆍ편성이 분리된 공익방송 등을 제시했다. 자본 조달이 가능하냐는 등 지적이 많았지만, 그 취지만은 큰 공감을 얻었다.

'닥치고 종편!'의 폐해

당시 가칭 '오픈TV'라는 이름으로 종편을 추진하던 한 언론인 선배와 실현 가능성을 놓고 이야기하던 중 "재주만 넘는 곰 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이 애써 종편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는데 정작 과실은 다른 쪽에서 챙길 수 있다는 우려였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시피 현 정권이 들어서고 새로 출범한 방통위가 '닥치고 종편!'식의 총대를 메면서 그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애초 제기된 종편의 도입 취지는 사라졌고, 당연히 뒤따라야 할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대한 고려와 대책도 철저히 무시됐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이 '악담'이고 '왜곡'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일각에선 지금 종편의 꼴을 보면 금세 망할 거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될까 봐 더 걱정이다. 정권의 특혜를 업고 흥한 자가 그저 조용히 망하는 전례를 보지 못한 탓이다. 언제 헐크로 변할지 모를 이 갓난아기, 정말 무섭다.

이희정 문화부장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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