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신 재정협약에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3대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한 목소리를 냈고, 협약 체결 직후 큰 폭으로 상승했던 글로벌 증시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탈리아 등 재정 위기에 처한 나라의 국채금리도 다시 상승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등 EU 23개국은 신재정협약에 대해 "유럽 통합을 향한 결정적 발걸음"이라고 자평했지만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디스는 12일(현지시간) "신 재정협약이 위기 상황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내년 초 EU 국가의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EU정상회의에 앞서 유로존 가운데 독일, 프랑스 등 15개국의 신용 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EU 위기를 해결하려면 더 강력한 부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재정협약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구속력이 부족한 탓이다. 협약이 발효되려면 각국 의회의 찬반투표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부담 증가와 재정 주권 약화를 우려하는 국가들이 쉽사리 동의할 리 없기 때문이다.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결정적 조치가 빠져 있어 시장은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협약이 재정적자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 누적 적자는 60% 이내로 유지하게 하는 등 건전성은 지키도록 했지만 재정 위기국의 '곳간'을 채워줄 단기 처방 마련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의 낙제점에 더해 정치적 파열음도 불거지고 있다. 프랑스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RTL방송 인터뷰에서 "현재 위기를 벗어나려면 경제성장이 필요한데 신 재정협약은 유럽을 수년간 긴축 재정의 그늘에 둘 것"이라며 "당선되면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 대량 매입을 통해 재정위기국의 '최종 대부자'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력한 야당 대선 후보가 협약을 주도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것인데 워싱턴포스트는 "올랑드 후보가 수개월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어 재정 협약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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