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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 '박하' 낸 시인 허수경/ "시공간을 뛰어넘어 떠도는 자들…그런 상처와 상처의 소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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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 '박하' 낸 시인 허수경/ "시공간을 뛰어넘어 떠도는 자들…그런 상처와 상처의 소통 이야기"

입력
2011.12.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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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터키의 고대 도시, 하투샤(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에서 유적 발굴 작업을 하던 시인 허수경(47)씨는 인근 야생 박하 군락지의 박하향을 맡으며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시공간을 훌쩍 넘어 삶을 떠도는 자들의 상처와 멜랑꼴리에 대해. 그 자신 19년 전 훌쩍 독일로 떠나 고고학을 배우며 시간의 충적층을 헤집고 살아온 시공간의 유민(流民)이기에.

시인의 마음 속에 그렇게 6년여의 세월이 응축된 이야기가 <박하> (문학동네 발행)라는 장편소설로 나왔다. 독일에서 체류하며 올해 4월부터 4개월간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일일 연재한 허 시인은 지난달 귀국해 원고를 다시 다듬었다.

13일 서울 서교동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허씨는 "다들 상처가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는, 그런 상처와 상처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며 "어떤 의미에선 삶이 그렇게 만들고, 어떤 면에서 우리가 그렇게 생겨 먹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세번째 장편소설인 <박하> 는 액자 소설로, 교통사고로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외톨이가 된 이연이 20세기 초 중국을 떠돌다 독일에 입양돼 고고학자가 된 이무의 기록을 보며 그 발자취를 따라 가는 이야기다. "나에게, 내가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일 것이다. 너에게,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 너에게로 가기 위해"라는 기록의 첫머리를 읽고 묘한 동질감을 느낀 이연은 독일, 터키로 이동해 그의 행적을 되밟는다. 기록 속 주인공 이무는 하남이란 고대 도시를 찾아 나섰다 떠돌이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이연과 한 세기 전 이무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소설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우울 속에서 시공간을 방황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허씨는 "고고학을 같이 배우던 가까운 친구가 있었는데, 여행 중에 시리아의 한 도시에서 차에 치어 숨졌다"며 "그와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이무라는 인물로 형성됐다"고 말했다. '너는 이 지구의 어느 길 위에서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로 시작하는 '작가의 말'에 나오는 '너'도 그 친구라고 했다.

이무가 사랑하는 여인도 시간 감각을 잃고 신화적 환각 증세를 앓는 이. 허씨는 "근대 학문을 통해 어떤 땅의 지도를 작성하고 측량을 하면서 신화적 지도를 잃어버리게 됐다"며 "마음 속의 판타지는 일종의 휴식 공간인데, 잃어버린 그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의 주된 정조는 멜랑꼴리. 독일인 헬무트가 이무를 입양한 이유도, 이무가 하남이란 도시를 들었을 때 느낀 것도 멜랑꼴리다. '세상을 살면서 단 한번 있을 것 같은 순간을 본 듯한 느낌'으로서. 허씨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느냐"며 "이 연민의 감정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인데, 우리 마음의 근본적 멜랑꼴리다"고 말했다.

시인으로서 세 번째 소설을 쓴 것에 대해 그는 "독일에 머물며 우리 말의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고 소설 쓰기는 말을 연습하는 과정이었다"며 "우리 말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제겐 목숨 같이 중요한 일이었다"고 했다.

출간 기념 행사 등을 가진 뒤 15일 독일로 돌아가는 그는 "내게 고향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공간"이라며 "책을 두고 떠나니까 제 책이 고아로 남는 셈인데 잘 돌봐달라"며 웃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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