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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상들의 은퇴식/ 디자이너 윤희수 '걸상과 디자이너-숨쉬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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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상들의 은퇴식/ 디자이너 윤희수 '걸상과 디자이너-숨쉬다'전

입력
2011.12.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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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끔했던 등받이엔 여러 번 뗐다 붙인 이름표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다. 수도 없이 앉아 반질반질해진 걸상은 때론 기분 상한 아이들의 동네북이었다. 아이들이 바닥을 청소할 때면 의자는 숨죽인 채 책상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피부가 다 헤질 정도로 30여 년간 소리 없이 자기 몫을 한 걸상의 마지막 거처는 그들을 한 줌 재로 만들어 버릴 소각장이다.

학교에서 버려져 곧 소각 처분될 400개의 걸상을 위한 소박한 은퇴식이 마련됐다. 디자이너 윤희수(52)씨가 서울 신천동 석촌호수변 갤러리水에 마련한 '걸상과 디자이너-숨쉬다'전이다. 수십 개의 걸상을 한쪽 구석에 쌓거나 둥글게 혹은 등을 맞댄 채 일렬로 배치했다. 갤러리 안팎에 모두 전시해 호수변을 걷다 잠시 앉아 쉬었다 가는 이들도 있다.

의자 위에는 평생 한번쯤 있었을 걸상의 경험을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 붙였다. '후다닥' '별이 뜨는 곳' '다시 나다' '오래된 모더니티' '어느 봄날의' '책상 위에 올려놔'. 근사한 졸업 사진일까. 한쪽 벽에는 걸상을 풀이 무성한 호숫가나 산에 가지런히 놓고 촬영한 사진도 걸렸다. 작가는 걸상을 아기처럼 업고 산에서 내려가는 영상을 촬영해 사진으로 인화도 했다.노고에 대한 위로라고나 할까.

1991년부터 '느림'을 테마로 작업하는 윤씨는 "느림을 동반하지 않는 빠름은 생명력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무걸상이 만들어지려면 30년 이상 자란 나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걸상은 30년도 오래 썼다고 폐기 처분해 쓰레기가 된다. 현대사회의 소비문화와 동시에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시는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걸상과 서서히 교류하듯 앉아보고, 매만져볼 수 있는 소박한 전시 공간에서 나무 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듯하다. 이달 20일까지. (02)412-0122.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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