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을 달리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포항제철 신화를 이룩한 `철의 사나이'일뿐 아니라 `정치인 박태준'으로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4선(11, 13∼15대) 국회의원에 민정당 대표위원과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에 이어 제32대 국무총리 등이 그가 남긴 정치적 흔적이다. 총리까지 역임했지만 그의 정치 역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육사 6기 출신으로 1961년 5ㆍ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각계의 조명을 받았다.
이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박 명예회장은 대한중석사장을 거쳐 1968년 포항제철 사장을 맡아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신념으로 불모지였던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박 명예회장이 정계에 본격 입문한 계기는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에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참여한 데 이어 1981년 11대 전국구 의원(민정당)으로 당선되면서부터다.
박 명예회장은 13대 국회 때인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집권당인 민정당 대표에 오르며 정치 전면에 섰다. 그러나 민정당 대표 취임 후 며칠 만에 이뤄진 3당 합당으로 민정계를 대표하는 민자당 최고위원이 된 뒤에는 당내 민주계를 이끈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게 된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각제의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요구하다 YS와 갈등을 빚었고, 14대 대선 직전인 1992년 10월 광양에서 YS와의 막판 담판이 결렬되자 탈당했다.
1993년 2월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시련이 찾아왔다. 같은 해 3월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수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그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YS의 임기 말인 1997년 5월 포항 보선 출마를 위해 귀국할 때까지 4년여의 망명 생활을 해야 했고, 같은 해 7월 포항 북구 보선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그는 1997년 9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의 이른바 도쿄 회담을 계기로 ‘김대중-김종필 연합’에 합류한 뒤 야당 후보 단일화 협상이 타결되자 같은 해 11월 자민련 총재직에 취임했다.
국민회의와의 공동 여당으로 입지가 강화된 자민련에서 총재 직을 이어가다 2000년 1월 총리 직에 오른다. 박 명예회장은 총리 취임과 동시에 경제 총리로서 의욕을 불태웠지만, 불과 4개월 만에 낙마했다. 조세 회피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지자 사퇴한 것이다.
총리직 퇴임 이후 박 명예회장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긴 했지만, 그는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며 끝내 현실 정치를 외면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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