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발생한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악몽이 채 가시기 전에 벨기에에서 무차별 살상극이 벌어졌다. 벨기에 왈룬지방의 중심도시 리에주에서 13일 노르딘 암라니(33)가 수류탄과 소총 등을 난사해 3명이 사망하고 120여명이 다쳤다.
외신에 따르면 암라니는 이날 낮 12시 30분 리에주 생랑베르 광장 버스정류장 인근 계단에 나타나 갑자기 행인들을 향해 수류탄 세발을 던진 뒤 총을 난사했다. 암라니는 범행 직후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다리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암라니가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고 밝혔다. 범행 전날 부인에게 '사랑한다. 행운을 빈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미뤄 그가 범행과 자살을 이미 결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범행에는 벨기에군 제식무기인 FAL 소총 1정, 권총 1정 등이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의 배낭에서는 범행에 사용하지 않은 수류탄도 다량 발견됐다.
암라니의 무자비한 살상극으로 15세와 17세 남자 청소년 2명, 18개월 여아 등 3명이 숨졌고 120여명이 다쳤다. 18개월 여아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8시간 만에 사망했다. 부상자 중에는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리에주는 14일 낮 12시 희생자를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고, 정부는 각료회의에서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생랑베르 광장은 리에주 중심에 있는 관광 명소로 매일 1,800여대의 버스가 오가는 번화가다. 마침 이곳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고 있었고 기말고사를 마친 10대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현장을 목격한 현지 일간지 기자는 BBC 방송에 "네 번의 폭발이 일어났고 한 남자가 계단 위에서 사람들을 죽이려는 장면을 봤다"고 전했다.
경찰은 암라니의 범행이 테러와 무관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CNN 방송은 벨기에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암라니는 마약 및 총기 밀매 전과가 있으며 이날 성폭력 혐의로 경찰서에 조사 받으러 가는 도중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현지 RTL TV 방송에 따르면 암라니는 과거 20여 차례 범죄 조사를 받았고 로켓포와 AK-47 소총, 연사식 산탄총 등 9,500점의 무기 밀매와 관련해 2008년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뒤 지난해 10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런 정황상 가석방 상태에서 다시 기소될 경우 장기간 수감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
암라니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45세 여성의 시신과 사설 무기고, 대량의 대마초 등을 발견했다. 숨진 여성은 청소부로 일하는 이웃으로, 경찰은 암라니가 이 여성을 살해한 뒤 살상극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범행 당시 약물복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암라니의 시신을 부검하는 절차도 진행 중이다.
한편 이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도 극우 성향의 작가 지안루카 카세리(50)가 재래시장에서 세네갈 출신 노점상에게 권총을 난사해 세네갈인 두명이 숨지고 세명이 중상을 입었다. 카세리 역시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카세리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을 증오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또 로마에 본거지를 둔 극우주의자 그룹 '민병대' 회원 5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유대인 등을 대상으로 테러를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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